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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나의 인생

강연

by 지식소통가 2009. 3. 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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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꿈, 나의 인생

*준비 없는 시작, 열정으로 채우다

'뭔가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을 텐데'

대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유일하게 집중한 것은 바로 과 편집부였다. 책이 좋아서 책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편집부였고 그 곳에서 나는 과 최초의 학술지를 만들었다. 영어를 전공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 3학년 때는 보다 체계적으로 편집 일을 배우고자 서울에 있는 편집학원에 다녔다.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내 운명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대충하지 못하고 몰입하는 성격 탓에 두드러져 보였던지 함께 학원을 수강하던 한 분이 나의 열정을 보고 출판사를 만드셨다. 난 아무 조건없이 함께 일하기로 하고 최선을 다해 근무를 했다. 당시 유행했던 의학 스릴러의 작가 로빈 쿡의 다른 분야 소설을 번역해서 출판하게 되면서 그 때 당시 신생 출판사로서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사장님은 신이 나서 다음 책을 기획하고 난 인터뷰를 다니고 편집을 하면서 밤 늦은 시간까지 지치지 않고 열중했다. 그렇게 나는 끝까지 그 출판사에서 내 인생을 시작하고 멋지게 성공하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어떤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이 없었던 탓에 뜻하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고 말았다. 난 편집학원에서 만난 남편과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아무런 미래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출판사 사장님에게는 나의 임신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분의 절망과 낙심이 기억나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나라는 사람을 조금만 더 제대로 아셨더라면 아마도 지금까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사장님이 나를 포기하셨다. 나는 퇴직하는 순간까지 편집과 기획을 동시에 진행하다가 그 회사를 나왔고 그 이후 연락이 끊겨 버렸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분야에 경력이 없다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난 연이은 출산으로 생긴 3년여의 공백을 깨고 사회에 진출하려 했지만 내가 좋아하던 출판관련 일을 연결할 인맥도 없었고 그렇다고 스스로 찾아 나설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일이 바로 내가 전공한 영어교육과 관련된 어린이 영어학습지 일이었다. 1998년 12월 YBM 시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주니어 학습지 사업은 영어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었다. 난 결코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은 어디로 가고 돈 벌이를 위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YBM 에서의 일은 다행히도 내게 수많은 기회를 주었다. 영어전공이 사실 나에게는 핸디캡(영어전공이라고 하면 다들 영어를 잘 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함)이 될 수 있는데 어린이 대상이라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고 운이 좋아서인지 목소리 큰 것 외에는 그다지 장점도 없는 나에게 여러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힘을 보태 주었다. 정해진 시간에 다른 생각하지 않고 몰입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따랐다. 입사한 첫 해 연도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시상금과 강사료를 합치니 5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2000년이니까 꽤 많은 수입이었다. 그 이후 그 일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든 노하우에 대해 교육할 기회가 생겼고 그 교육은 나에게 미래에 또 다른 기회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나의 경험이 담긴 교육을 통해 도전받고 동기 부여된 많은 사람들이 생기자 회사는 나를 교사출신으로는 최초로 지국장으로 승진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다른 업무를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정식 직원으로서의 회사 생활은 그 전까지 내가 한 실적에 맞게 받던 급여와는 다른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난 나름의 집중력을 발휘해 지국장으로서 또다시 실력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교사들과 함께 하며 고충을 들어주었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나 나름대로의 원칙은 바로 '늘 한결같은 모습을 지키자'였고 그것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출근시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절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각은 안 한다, 개인적인 일로 회사의 일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 숫자 하나의 오차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일을 하겠다 등의 원칙들을 지켜나갔다. 그래서인지 처음 발령되었던 지국에서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하마터면 문 닫을 뻔했던 지국을 전국 1등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곳은 그동안 교사모집도 어렵고 문제교사들이 많아서 지국을 폐쇄하려고 생각하던 곳이었는데 그처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니 회사의 관심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은 성과를 내니 인정도 받고 더 큰 지국으로 발령이 났다. 그곳에서의 1년은 나하고의 싸움이 관건이 되었다. 회사에서 처리할 일은 첩첩산중인데 집안에서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직장을 다니느라 엄마 집 근처에서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디스크 수술을 하시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지자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경우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지 잠깐 망설였지만 파출부를 부르고 친정아버지께 아이들을 부탁한 후 엄마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2주일을 출퇴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병원에서 출퇴근하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난 성격상 오래 고민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서 회사에 오면 집안일을 잊어버리고 집에 오면 회사 일을 잊어버린다. 그러니 회사에 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업무에만 매진할 수 있었고 집에 가면 집안일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어찌 보면 오래도록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움은 결코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하는 옛말처럼 엄마의 수술 이후에 남편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서 가게 문을 닫게 되었다. 말하자면 파산이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꿋꿋할 수 있었다. 아침에 눈 뜨면 어김없이 출근을 했고 집안일을 잊어버린 채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놓치지 않고 처리해 나갔다. 내가 목표한 것은 반드시 지키려고 애쓴 탓인지 업무성과는 꾸준히 좋아졌다. 32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교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그리고 최연소로 국장승진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잠깐 또다시 어려움이 닥쳤다.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으신 것처럼 보이시던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위암판정을 받으셨고 수술 후 50여일 만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사람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듯 했다. 한 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오고 이정도면 바닥이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으면 끝도 모를 나락으로 더 떨어지고 하는 시간들을 거쳤다. 그러면서 내성도 깊어져서 이젠 어지간한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단련이 되었다. 그 힘든 시기를 회사를 병행하면서 넘겼다. 다행히 회사 사람들의 도움으로 쓸쓸하지 않은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는 회사라고 하는 울타리 속에서 나를 단련해 나갈 수 있었다. 온순하지 못한 성격에 상사를 힘들게 했음에도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회사는 내게 많은 기회와 보상을 해 주었다. 나의 뜻 모를 자만심은 아마 그 때 생겼지 싶다. 나만 잘하면 아무도 날 건드리지 못한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만심 말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린 나이에 승진한 나에 대해 좋은 말들을 해주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우쭐한 기분 속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어떤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라든지 나의 미래를 위해 무슨 준비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아예 할 생각조차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만 살면 돈도 벌고 승진도 한다라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 때부터 나의 인생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 같다. 그 회사 사장님 역시 나의 열정 하나만을 믿고 함께 하기를 희망하셨다. 나는 나를 믿어주시는 것만큼 최선을 다했고 그래도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나갈 수 있었다. 주말까지 반납하고 몰입하여 회사의 틀을 만들었다. 함께 근무하던 팀장도 열정을 다해 주었기에 신명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나는 나의 또 다른 목표를 정할 사이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매출이 적어지면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그 직원들을 책임져야 했던 나도 더 이상 그 회사에 있을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계획 없는 나는 나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해야만 하는 시간들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회사라고 하는 울타리 속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고 나에게는 버팀목이 되어 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나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고 나의 확고한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나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든 것을 나 혼자 결정하고 행하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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