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심이 만난 e-사람]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님을 만나다
그 많던 알파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총망받던 알파걸들이 유능한 알파우먼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이 궁금하던 터에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님을 만났다. 아담한 체구에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신 교수님은 잔잔한 어투로 사회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떻게 해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알파우먼이 될 수 있는지, 당신 자신은 어떻게 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고, 훈련하며 긴 시간을 견뎌 왔는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 가족사회학, 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여성과 일의 균형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성평등위원회 위원으로 여성, 가족 정책과 심의를 하고 젠더나 성평등정책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재단에서 여성단체를 지원하거나 양성하기도 하고 한국여성학회 이사, 한국사회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
제가 한창 공부하던 80년대는 그 어느 시절보다 남녀차별이 큰 시대였습니다. 미국에 가서 느낀 점은 자유의 상징이고 기회의 땅이라고 알려진 그 곳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거였습니다. 결국 차별이 큰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사회문제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중 ‘여성’과 관련된 젠더, 성별불평등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성별격차완화, 파트너쉽, 동등한 남녀 사회를 기대하면서 일가족양립이라는 분야를 최초로 박사논문에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30여 년간 사회학과 여성학을 연구하면서 대한민국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80년대 초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10% 미만이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교육기회 자체는 평등해졌습니다. 게다가 아들선호사상이 사라지고 적은 수의 자녀를 갖게 되면서 딸들에게도 아들 못지않은 기대와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로 변모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름하야 ‘알파걸’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에서 유래된 것으로 '첫째 가는 여성'을 의미하는 알파걸은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엘리트 계층의 여성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유능했던 알파걸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평범한 여성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직장에 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결혼과 동시에 휴직하거나 국가가 장려하는 육아휴직 사용비율은 증가하지만 동일직장 복귀율이 감소하는 것이나 여성임원비율이 OECD 국가 중 최저인 것만 보더라도 유능했던 알파걸들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알파우먼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10명 중 9명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시대에 “함께 벌고 함께 돌보는 가족”과 같은 남성돌봄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인 듯 합니다.
알파걸들을 알파우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해법으로는 가족, 직장, 지역사회가 공동 책임을 지고 그녀들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기업 입장에서도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중요한데 다양한 인적구성은 창의성과 혁신에도 높은 기여를 하고 있음이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훈련해 왔는지?
제가 교수로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이 아닌 각자가 가진 역량으로 소통하는 파트너쉽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입니다.
저 자신 또한 지금의 자리에 오기 까지 가장 중요했던 점은 바로 저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내적인 힘Self-Impowerment이었습니다. 내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첫째, 자타공인 실력Skill이 필요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도 실력입니다. 일단 실력이 있어야 관계를 좋게 할 시간도 벌 수 있고, 일을 하면서 다른 기회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철학이 필요합니다. 자기철학은 삶의 가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의미합니다. 자기철학이 있어야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그렇게 결정된 일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셋째, 소통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순한 양과 싸움 닭을 오가며 커뮤니케이션한다.”
상대방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극과 극을 달려야 하는데 그것도 능력이라 시간을 두고 키워야 합니다.
넷째, 여성들의 자매애도 필요합니다. 여성들에게는 젠더파트너쉽이 필요한데 멘토나 수호천사로 대변되는 이들은 긍정적 상호지지자들입니다. 정서적 관계의 탄탄한 연대가 내적인 힘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을 지지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지지자도 필요합니다. 일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내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동안 준비하고 훈련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긴 시간을 훈련을 하면서 버텨낼 때 단단한 내공의 실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소통하고 계신지?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바로 ‘어떻게 공감하는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실제로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과 연결된 경력단절은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돌봄의 경험은 공감능력을 향상 시켜 소통능력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자의 경우에도 이런 돌봄 경험이 상대방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 소통능력 향상에 지대한 도움을 받게 됩니다. 제가 했던 여성학 공부는 나와 타자 둘 모두를 고려하는 학문이라 관계지향적인 인간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 온라인 소통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에 온라인으로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홀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은 시간 관계상 많은 부분 소통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바로 온라인 소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긴 시간 어떻게 견디셨는지?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늘 마음 속에 갖게 된 생각은 ‘나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입니다. 여성의 능력으로 사회에 기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나 자체의 정체성에 준하여 나를 바라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흔히 여성들을 제2의 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타자화된 모습으로 여성을 보는데서 기인합니다.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처럼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여자들은 스스로 굴레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제 타자화된 여자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 보는 나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저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음을 깨닫고 내가 보는 나의 모습대로 살면서 30여년을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제가 후배들이나 제 딸들에게는 지금의 세상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사명감도 저를 지탱하게 한 힘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20대는 20대의 시점에서, 30대는 30대의 시점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각각의 시간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누구든 자신의 때를 맞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룬 것도 많지만 앞으로 남은 꿈이 있다면 한국사회가 사회적으로 성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 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여성학에 관해 생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한 편이라는 말을 건네시는 모습에 관계지향적 학문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을 여성이나 남성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고 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 젠더토크 36.5도 [알파걸, 위태로운 여자들]을 통해 가족, 직장, 지역사회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알파우먼을 양성하는 게 얼마나 경쟁력을 갖게 되는지를 깨닫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