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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심이 만난 e-사람] 여성최초 조희진 차장검사를 만나다 @서울고등검찰청

소통인터뷰 & 토크쇼/조연심이 만난 e-사람

by 지식소통가 2014. 8. 2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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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심이 만난 e-사람] 여성최초 조희진 차장검사를 만나다

 

“옳은 게 이기는 게 아니라, 강한 것이 옳은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해자를 피의자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검사인 저 역시 몰랐단 말입니다.”

“무죄라는 건 말이야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야. 죄가 있는 걸 증명하지 못했다는 말이지.”

얼마 전 끝난 TV드라마 [개과천선]이나 [골든크로스]에 나오는 대사를 보더라도 진실이 진실 그대로 밝혀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억울할 때가 언제일까? 아마도 진실이 왜곡될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럴 때 진실을 밝혀 억울한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사람이 바로 검사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범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피의자를 법원에 기소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남자의 성역을 넘어 여성최초 차장검사가 된 조희진 검사를 만났다. 검사하면 떠오르는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털털한 웃음과 풋풋한 인간내음 가득한 그런 모습이었다. 최초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라는 또다른 롤모델이 되고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법에 대해 물었다.  

 

서울고등검찰청 조희진 차장검사

 

 

 

현재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 주세요.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어지간한 실무결제는 제가 하고 있습니다. 고등검찰청은 검찰청 중 상급기관으로 서울, 인천, 경기도, 강원도를 관할하는 고등검찰청에서 고소사건에 대한 이의신청사건을 다룹니다. 살인사건을 비롯해 중요한 사건이 기소된 것, 형이 무거운 사건에 대한 항소심, 국가배상소송과 행정청 처분에 대해 이의제기하는 행정소송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올라오는 소송 건에 대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자료를 다 읽지는 못하지만 맥락만큼은 정확하게 보고 철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저의 판단으로 누군가의 진실이 흐려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이런 일을 하게 된 계기와 재능(Talent)은 무엇인가요?

 

사실 어린 시절의 저는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집안의 5남매 중 막내로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건강한 심장박동과 발차기를 했던 만큼 유년시절을 노래하고 춤추고 코미디언 흉내내기하며 자유롭게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대학을 보내면서도 여자는 지성과 교양을 갖춰 시집 잘 가면 된다고 하셨지만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여자라도 확실한 직장이 있어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이겨낼 수 있다고, 남자한테 의존해서 살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쓰장충으로 선발될 정도로 예쁜 언니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저는 집에 있는 책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습니다. 워낙 식구가 많다보니 막내인 저에게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지셨는데 덕분에 자유롭게 제 직업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띠인 저에게는 남편 뒷바라지 하는 현모양처보다는 법관처럼 강한 직업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컸습니다. 언니들은 고시공부가 어려울 거라 했지만 저는 신문 보는 것, 요약하는 것, 글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법대가 끌렸습니다. 보통 성적으로 들어간 법대에서도 장학금 받기 어렵다고들 하는 와중에 1학년 때 성적이 올A+이 나와서 법대가 적성에 맞는가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배운 데서 나오겠지 생각했던 저의 막연한 기대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지요.

 

 

 

사실 저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성격이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면서 저에게 맞는 게 뭔지 찾는 편이지요. 어쨌든 하루 일과 중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는 하지만 절대 밤은 안 새웁니다. 최선을 다하되 뒤돌아보지 말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훈련(Training)하셨는지요?

 

사실 사람들은 검사라고 하면 공부를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릴 적 저는 노래하고, 춤추고, 흉내내고 하면서 자유롭게 제 방식으로 공부하는 정도였습니다. 과외 한 번 없이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한 번 시작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끈기를 가질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와 오빠가 단단히 한 몫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휴일 아침이면 무조건 저를 데리고 산을 올랐습니다. 아무리 졸려도 아버지를 따라 간 이유는 워낙 엄한 아버지 말씀도 있었지만 같이 산을 갔다 오면 용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뒤에 쳐져 늦게 가는 것보다는 아버지 뒤에 바짝 따라가야 먼저 쉴 수 있고, 덜 힘들었습니다. 어차피 가는 거라면 늦게 가는 것보다는 먼저 가는 게 낫다는 걸 알았고 고통 뒤에는 낙樂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오빠가 수영을 가르쳤는데 물놀이하는 줄 알고 따라갔다가 수영선수처럼 혹독하게 저를 훈련시켜서 당시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오빠가 할 일이 없었는지 정말 필사적으로 저를 가르쳤습니다. 결국 물만 먹던 제가 물 속에서 제대로 수영했을 때의 그 기쁨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제규격인 야외수영장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표량을 달성하도록 가르쳐 준 오빠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훈련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 조희진 차장검사

 

사실 검사가 하는 일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일이 잘 안 풀릴 때 정신적으로 컨트롤하면서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완성도 있게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마도 어린 시절 등산과 수영으로 다져진 근력과 지구력, 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하는 동안은 어렵지만 해내면 기쁘다는 것과 지루한 과정을 잘 버틸 수 있도록 훈련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혼자서 운동을 합니다. 그러다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기분도 좋아진답니다.

 

소통의 시대인데 온·오프라인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직업상 온라인 소통에는 제약이 많은 편입니다. 아들과 소통하려고 시작한 페이스북으로 그저 잘 있구나 확인하는 정도에요. 의견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볍게 안부를 주고 받는 정도의 소통만 하고 있어요. 사실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금씩 온라인으로도 소통을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으로는 검찰 내 38개의 전문검사 커뮤니티가 생겨서 여성리더쉽, 여성폭력, 고령화 이런 테마를 주제로 하는 100여명 되는 검사들과 만나고 있어요. 올해 4월부터 근무시간 끝난 후 모여서 주제를 의논하고 그랬는데 첫 번째 세미나는 성폭력, 지난 번에는 가정폭력, 9월쯤에는 성매매 관련해서 얘기하려 합니다. 우리는 실제 케이스를 다루는데 외부에서 우리를 신뢰를 못하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하는 결정에 대해 믿지 못할 수 있으니까 외부와 많이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서 외부 사람들, 전문가들을 많이 섭외해서 학회 비슷하게 오픈해서 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진짜 소통이 가능해지겠지요.

 

세미나에서 발표 중인 조희진 차장검사

 

2013 사이버멘토링 대표멘토에 위촉된 조희진 차장검사

 

염수정추기경님과 함께 인사하는 조희진 차장검사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으셨을 텐데 시간(Time)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맨 처음 일반 업무를 할 때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때라 바빠서 아무 생각도 못했습니다. 주니어 검사였던 30대에는 신문 볼 시간도 없을 만큼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신문을 스크랩해서 관련기사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어 제목이라도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눈 팔 시간도 없었지요.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게 맞을 거에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몸을 움직이거나 주변 정리, 청소를 하면서 머릿속을 비워냅니다. 집에서 느긋하게 쉬면서 책이나 잡지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친구들과 수다도 떨면서 뇌를 휴식시키기도 하고 몸이 아프거나 승진의 고배를 마셨을 때는 주변의 이야기도 듣고 조언도 받으면서 견뎠습니다. 결국 인생은 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승진이 안 된 후에는 더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들으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저의 부족했던 점들을 깨닫고 반성하게 되더군요. 일이 안 풀릴 때에는 왜 안 풀리는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게 될 것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보고, 설사 그 선택이 틀리더라도 자기가 선택한 길이니까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생각하며 마인드컨트롤하면서 일상생활의 삶을 보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돈보다는 명예와 정의에 따라 살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고, 경제적인 가치를 높게 생각한다면 변호사가 되어 얼마든지 돈을 버는 일도 가능한데 어떤 선택이던 자신이 책임지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최고의 때(Timing)는 언제라 생각하시나요?

 

먼저 사법고시 합격했을 때입니다. 다들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한 것들이 허수인 것들이 많아요. 자기 적성에 맞고, 노력을 했으면 사실 경쟁률이라는 게 상관없는 건데, 먼저 연막을 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노력하면 결실이, 댓가가 온다고 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을 그 때가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 아들을 낳았을 때 시어머니도 좋아하셨고 저도 참 좋았습니다.

 

과거 여성정책 담당관 시절, 제가 여자라는 것에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고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만 잘하면 남녀는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의 경쟁력을 살리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얼마나 많이 향상시킬 수 있는지,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데 여성인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앞으로는 제도적으로도 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할 거에요. 그러다보면 제 인생의 행복한 때가 또 오리라 생각합니다.

 

 

 

 

 

  “이중유리천장을 깨라”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조희진 차장검사는 말한다. 외적인 유리천장은 극복할 수 있는데 육아문제나 가정문제로 일을 포기하는 등의 자기 스스로 벽을 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완성도를 높이고 자기가 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정성을 다하면 노력한 만큼 반드시 결과가 온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30년 내공의 조희진 차장 검사의 인생 자체를 엿본 것 같아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2014년 8월 27일 4시 여성가족부 주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주관의 열린 네트워크

“대한민국 최고에게 3T를 묻다”에서 여성 최초 조희진 차장검사와 만날 수 있다.

장소: 홍대입구 카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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