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린다'
'차라리 허공에다 말하는 게 낫다'
살면서 이런 말들을 듣거나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요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를 깊게 생각해보았다. 서로 말을 하기는 하는데 의미없는 말들만 난무하고 결국은 하지않은 만도 못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현대처럼 말이 많은 시대도 없다. 의사소통에 관한 수만가지 이론이 발표되고 타인과의 성공적인 대화법을 알려주는 교육과 도서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이론들을 알면 알수록 마음 한켠으로 솟구치는 허전함의 끝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사람들은 말을 번드르르 잘하는 사람이 좋은 화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고 나면 더욱더 공허해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세일즈를 하는 사람은 말을 유창하게 잘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그런 사람이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어눌하더라도 진심으로 열정을 담아 말을 하는 사람이 고객의 마음을 얻어 탁월한 성과를 만들기도 한다.
마음이 통하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고부간의 대화를 들어보자.
엄마젖을 뗀지 얼마 안된 10개월쯤 되는 어린 애기에게 젖병빠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면서 9시간이나 굶긴 시어머니 앞에서 며느리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운다.
며느리: 어머니, 애가 그렇게 우는 것을 더이상은 못보겠어요. 그냔 젖을 물려야겠어요.
시어머니: 무슨소리냐. 너 출근하고나면 낮에 애가 맨정신으로는 젖병을 안빨아서 잠들때까지 기다리던가 울려서 간신히 젖병을 물리는데 아주 힘들다. 어려도 버릇을 잘 들여야 하는데...
며느리: 그래도 너무 하시는 거 같아요.
그리고나서 시어머니는 이틀을 고생해서 결국은 애기버릇을 들여놓는다. 애가 맨정신에 젖병을 힘차게 빠는 모습을 보면서 며느리는 한마디한다.
며느리: 애들은 크면 알아서 다 잘해요. 어머니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버릇고치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이 말 한마디면 되는데 며느리의 말이 못내 서운하기만 하다.
이처럼 대화는 하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기에 속으로는 계속 쌓이기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수만 있어도 서로 오해하거나 다툴 일은 상당수 줄어들 것이다.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교육업체 대표랑 강의 문제로 연락할 일이 있었다. 한 번의 공개강좌 후 새로운 교수법이니 프로그램으로 개설해 보자는 말을 했다. 그 후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일정과 교재준비 차 연락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결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화를 몇번씩 하고 문자를 보내고 해도 답이 없었다. 그러다 다 늦은 저녁에 연락달라는 문자를 보고 연락을 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교수법이니 공개강좌를 좀 더 하고 과정을 진행하자는 내부의견이 있다는 것이었다. 강사와 조율하겠다고 하기에 연락시간과 연락처를 알려주고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강사는 전화오기로 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지만 몇시간 늦게 그것도 강사가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해서 연결이 되었고 다시 회의를 한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젠 전화도 문자도 답이 없다. 그런데 강사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에 대해 이 세계에 먼저 발을 들여놓은 강사는 조언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는 대부분 완곡한 거절인거라고, 아직 강사의 강의가 호의적이지 않은 거라고 말이다. 내 상식으로는 생각하던 강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적당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다음 기회를 만들어보자거나 이런저런 보완점을 말해주고 원하는 강의내용을 만드는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인맥관리라고 하는 것이 내가 필요할때만 하는게 성공적인 인맥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기존 강사는 한마디 덧붙인다. 더한 사람도 많다고......
교육업체대표가 이럴진데 그런 교육업체를 통해 하는 교육에 무슨 감동과 진심이 있을 것이며 현재 그 곳에서 강의하는 강사들도 어느 순간 아니다라고 하는 내부 판단이 서면 연락두절 상태에서 해결책도 모르고 황당하게 거부당하는 사태를 맞이할 지 모르는 것 아닌가?
세상은 돌고 돈다. 보기 싫은 사람일수록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만날때보다 헤어질 때 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당장 돈되는 강의, 늘 익숙했던 강의만으로 한치앞만 보고 운영하는 회사가 많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허전해진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커뮤니케이션에 혼선이 생겼다. 당장 아니라고 하면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언제쯤 가능할 수 있는지 또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보다 아닐 때는 모른척하고 나중에 필요해지면 그때 연락해도 되는게 지금 시대에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다 같다. 마음이 통하면 설사 당장은 거절을 당했더라도 다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다 관리하거나 서로 네트워크할 필요는 없다. 어찌보면 이런 것이 냉정한 교육시장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는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어둡고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강사들이 그리도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설움을 더이상 당하지 않을 수 있는 프로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혹시 나도 위의 대표가 저지르는 실수를 나도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을 맘 상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내게도 돌아온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인과응보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뿌린 만큼 거두는 게 세상사 인심인 것이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유창한 화법도 화려한 몸짓도 아닌 서로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려주는 배려고 사랑임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Se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