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심이 만난 e-사람] 1,500만부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의 국민작가가 먼총장에서 이웃총장으로 돌아오다!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좋다는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을 만나다
[조연심이 만난 e-사람]
1,500만부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의 국민작가가 먼총장에서 이웃총장으로 돌아오다!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좋다는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을 만나다
대한민국에 이보다 더 바쁜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고1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만화그리는 일을 53년째 지속하고 있는 그는 덕성여대 1호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덕성여대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1090 평화와통일운동 이사로 통일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데 주요 저서에는 베스트셀러인 ‘먼 나라 이웃나라’, ‘세계의 만화 만화의 세계’, ‘국제화 시대의 세계 경제’, ‘신의나라 인간나라’, ‘가로세로 세계사’,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등이 있다. 취임 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원복 총장에게 작가로서의 삶과 총장으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 사진: 백승휴 작가
요즘 근황은?
3월 1일에 취임해서 오늘이 50일째인데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총장의 업무라는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학교의 모든 것들, ‘덕성’이 들어간 것은 모두 다 챙겨야 하는 자리입니다.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네요.
재능Talent을 찾게 된 계기는?
중학교 3학년 때 신문반을 했는데 신문반의 친구 아버지가 한국일보를 창간했어요. 그 친구 아버지 신문사를 구경가서 친구가 나를 신문반에서 만화그리는 애라고 소개하니까 '어 너 잘됐다. 이거 베껴서 그려와 봐."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필사도 아닌 미군에서 나온 만화를 종이에 대고 베끼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때가 1962년 고1 때였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50년 이상을 계속해서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만화는 저급한 문화로 취급받았었는데 75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올 컬러로 된 고급만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스테릭스>라는 프랑스 만화인데 르네 고시니가 쓰고 알베르 우데르조가 그린 만화로 로마군과 싸우는 켈트족 전사들의 이야기였지요. 그 작품을 보고 만화도 고급문화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이미지출처http://www.vaio.or.kr/935693
제가 66학번인데 그 때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때문에 공대 붐이 한창이었습니다. 경기고 3학년 480명 중에서 360명이 서울대 공대를 갔을 정도였죠. 건축공학이 재미있을 것 같아 건축공학과를 선택했는데 첫날부터 미분·적분을 접했어요. 이건 아니구나 싶었지요. 그래서 학교에 거의 안 가고 만화만 그렸습니다. 독일에 유학 가서는 만화를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만화와 연관성이 있는 시각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보고 왜 그렇게 ‘외도’를 많이 했느냐고 묻는데 전 한 번도 외도한 적이 없습니다. 건축공학, 시각디자인, 만화 모두 종이에 없던 걸 그려내는 것이니까요.
고수의 훈련법Training은?
간단하다. 원고료 받는 재미로 계속 그리면서 연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훈련된 것이지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날엔 한 분야만 깊이 알면 됐지만 요즘엔 T자형, 이제는 T자보다 더 유익한 ㅠ자형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일을 즐기면서 오래할 수 있었습니다.
ㅠ자형 인재를 설명하는 이원복 총장
그리고 다작을 안하는 것도 저만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최고의 질을 고수해야 하니까요.
만화그리는 것은 집 짓는 것과 똑같습니다. 만화는 예술이 아니라 과학에 가깝습니다. 만화는 자료수집, 정리, 분리가 오래 걸리지 그림은 손에 익어서 빨리 그리면 반년이면 그릴 수 있습니다. 자료수집은 평소에 꾸준히 하고 있어요. 우선 이해를 하고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스토리라인을 짭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1975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외국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외국인이 (국내에) 거의 없는 섬 아닌 섬 같은 나라였습니다. 9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에 처음 가서 어마어마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로마시대부터 외국과 교류하며 글로벌화된 독일에서 지내면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테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지요.
학비와 생활비도 벌어야 해서 어린이신문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6년 동안 매주 항공우편으로 원고를 보냈는데 한 번도 ‘펑크’ 낸 적이 없습니다. 술 마실 것 다 마시면서요. 이제까지 신문 연재만 40년 넘게 했는데 마감은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습니다. 프로가 뭡니까?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게 프로입니다. 학생들한테도 좋은 작품을 내는 게 훌륭한 게 아니고 마감을 잘 지키는 게 훌륭한 거라고 가르쳤습니다.
요즘 전공한 것과는 다른 직업을 가지는 학생들이 많은데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당장은 탑Top이 되지는 못하지만 오래 할 수는 있습니다. 오래 견뎌야 그 일을 정복할 수 있게 되고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젠 30년 경제활동을 하던 시대에서 60년 이상을 경제활동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인생을 두 배로 살 수 있습니다. 단거리에서 마라톤을 해야 하는 시대에 좋아하는 일을 해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전공 하나만으로도 잘 살 수 있었지요. 이젠 자기 전공만 아는 ‘전문 바보’는 소용없습니다. ‘100세 시대’에선 일생 동안 적어도 서너 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겁니다. 미래엔 한 가지 전공으론 버티기 어려울 거에요.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온, 오프라인 소통Talk은 잘 하고 있는지?
다른 만화가들과 따로 만날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학교에 있고, 그분들은 화실에 있으니까요. 그저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소통도 제가 아날로그 세대라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청춘들과 만날 수 있으니 아주 막혀있지는 않은 거 맞겠지요.
어떻게 시간Time을 견뎠는지?
천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매사 긍정적이에요. 자기에게 철저하기보다는 철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철저하지 않으면 죽으니까요. 31년간 덕성여대에서 학교밥을 먹고 변함 없이 모든 평생을 여기서 같이 했는데 학교가 어려워진 이 때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내 몫을 해야겠다 생각해서 총장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누렸던 학교의 평판들을 되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교육의 질을 높이고, 연구환경을 개선하고, 학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내가 계속해서 방송, 라디오에 출현하는 것은 덕성여대 타이틀이 공짜로 나가기 때문이지요. 하하하!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 사진: 백승휴 작가
요즘 청년실업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압니다. 옛날엔 무슨 일을 하던 블루오션이었는데 지금은
디지털화되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청년실업률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대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3포, 5포, 삶포시대라고 하는데 그것은 시작하기 전부터 진 것입이다. 옛날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포기하면 죽으니까요. 지금은 포기해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때Timing는 언제?
만화를 그릴 수 있고, 그 만화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바로 제 인생의 최고의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생동안 한 것이 만화를 그리고 가르친 것 뿐입니다. 기복없이 잔잔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분들과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와 형제의 힘없이 혼자 컸기 때문에 평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빚을 진 것이 없었습니다. 저 자신을 홀로 지켜야 했으니까요.
총장의 임기가 끝나면 다시 자유롭게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은 자유로워선 안되겠지요. 총장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통일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통일문제입니다. 만약 당장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망할 거에요. 독일통일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이 그렇게 잘 사는 나라도 아니고 북한은 가장 못사는 나라인데 북한 먹여살리다가 남한과 같이 무너질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통일이 올 텐데 늦을수록, 준비를 안 할수록 젊은이들 몫이 됩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통일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1090평화와통일운동이 해야 할 가장 큰 핵심은 민간교류차원에서 해야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진출처http://www.mediapen.com/news/articleView.html?idxno=69055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은 관심갖기입니다. 우리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게 먼저에요. 그런 측면에서 현재 1090이 추진하고 있는 ‘북한알기가 통일이다’라는 슬로건은 아주 적절한 거 같습니다.
대학에서도 강연을 할 때면 늘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통일은 내일 올 수도 있고, 아주 먼 훗날 될 수도 있다. 대비 없이 갑자기 통일이 되면 남북이 모두 쓰러질 수 있다 . 그래서 우리 대학도 통일을 대비한 차별화된 교육을 도입하고 싶다.”
여러가지 통일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의 외에도 진행하려고 합니다. 통일준비를 청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덕성여대의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넓은 분야를 조금씩 아는 ‘한일자(一)형 인재’가 대세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자기만의 전공이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갖춘 ‘T자형 인재’가 인기죠. 미래 사회는 두 개의 전공에 대해 융합적인 시각을 갖춘 ‘ㅠ자형 인재’ 시대가 될 것입니다. 융·복합 전공제를 통해 학생 스스로 적성과 목표에 맞게 수강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뷔페형 커리큘럼’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현재와 같이 학생들에게 수강 과목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도시락형 커리큘럼’으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덕성여대를 ‘21세기형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양성하는 학교로 키울 것입니다.
총장이 된 이후에 개인적인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덕성이 예전의 명성을 찾고 나면 전 다시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 사진: 백승휴 작가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인터뷰 내내 지켜볼 수 있었다. 유학 시절 폐차 직전의 중고차로 유럽을 돌아다녔던 이 총장은 “여행과 독서가 나의 가장 큰 밑천”이라고 말한다. 먼총장에서 이웃총장으로 돌아온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이 머지않아 덕성여대의 과거 명성을 되찾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만화 그리는 일을 계속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그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
덕성여대 이원복 총장 인터뷰는 1090 평화와통일운동 청년분과위에서 모바일매거진 1090CCTV 커버스토리에 담기 위해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사진은 백승휴 작가가 수고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