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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심이 만난 e-사람] 한국판 CSI, 여성 최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지낸 정희선 원장을 만나다

소통인터뷰 & 토크쇼/조연심이 만난 e-사람

by 지식소통가 2014. 4. 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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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진도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여러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감정과 추측을 넘어 그 어느 때보다 과학수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때다. 진실을 밝히는 데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전문성도 요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춘, 그러면서도 감성적 인간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후 국과수) 원장이었던 정희선 원장을 만났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여정과 여성으로서 거쳐야했던 크고 작은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가 궁금했다.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정희선 원장 (사진출처: 동아일보 기사)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분석과학기술은 쉽게 말하면 대추차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를 분석하는 기술이나 분석 장비사용법을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특수 목적을 가진 대학원으로 여러 기업에서 사용하는 각종 장비를 활용할 수 있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고, 졸업이 가능합니다. 기업에 필요한 장비가 워낙 고가지만 기업들마다 사용하는 기능은 극히 일부분인 현실을 감안해 장비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하고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학부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전공을 가진 교수들이 가르치는 대한민국 최초, 세계 최초의 융합교육이라 볼 수 있습니다.

 

 

 

 

Q: 한국판 CSI,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최초 여성 원장(34년), 최초의 마약 검출 전문가, 최초의 아시아인 국제법독성확회 학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Talent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셨는지요?

 

약대를 다녔던 저는 대학시절 국립과학수사연구소(지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됨) 소장님의 특강을 듣고 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중요한 일을 맡아 한 것은 아닙니다. 입사 후 8개월간은 드러나지 않는 하찮은 일만 주어졌습니다. 복사하고 커피를 타면서 내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별로 할 일도 없는데 나를 채용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제게 중요한 일을 시키지 않는 건가요?”

무슨 용기가 났는지 입사 8개월 차였던 저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상사에게 밝혔습니다. 그 모습이 대견했는지 무관심했던 상사도 얼마 뒤부터 중요한 일에 저를 합류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일은 처음부터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사회 초년시절이었습니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운은 없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장비를 활용하여 가짜 꿀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전주에서 8억 원 상당의 가짜 꿀 사건이 벌어져 실제 그 사건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분석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범인을 잡는 데 일조 한 공을 인정받아 KBS에서 인터뷰까지 했었습니다. 그 때부터 내가 좋아서 한 일이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마약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우리나라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소변검사를 통해 마약을 감별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쥐에게 마약을 먹여 소변검사를 하고 마약을 먹었는지를 찾아내는 실험이었습니다. 80년대 초 마약은 일본수출용이었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수출이 막히면서 국내소비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부산에서 최초로 히로뽕이 발견되었고 소변을 통해 마약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일이 실제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일이 너무 많아 힘들고 피곤했지만 결과를 추출해내는 그 과정이 너무 좋았고, 그 시절 승진 누락으로 사표를 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쏟아지는 소변검사에 몰입하다가 시기를 놓쳐 퇴사 고비를 넘기기도 했었습니다. 약대를 나와서 마약의 약리작용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고 연구를 하면 그와 관련된 사건이 생겨 궁극적으로 사회에 공헌하게 된 것의 연계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국과수에 부검하시는 법의관 선생님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뭔가를 얘기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들어주는 게 누구겠느냐”고.

이런 말을 들으면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고 제대로 잘 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듭니다.

 

 

 

 

Q: 자신만의 훈련법은 무엇인가요?

 

김연아가 2014 동계올림픽 은메달을 딴 후 했던 인터뷰 첫 마디가 생각이 납니다.

“재능이 있었고, 충분히 훈련했고, 운이 좋았다.”

저도 같은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문제가 생기면 해법을 찾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풀어야겠다는 집념이 저를 훈련시키는 최고의 비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저는 늦게까지 일해도 피곤한 줄 몰랐고 월급, 출퇴근 시간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문제의 해법을 찾았을 때 행복을 느끼는데 제가 하는 일이 문제를 푸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에서 범인을 검거하거나, 안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명감까지 생긴 것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도전의식이 나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성장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10년 법칙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건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소의 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만일 10년 정도만 근무했다면 결코 국과수 원장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를 넘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어떤 일을 하던지 최소한 3년은 견디라고 말합니다. 싫어한다고 해서 이직을 해도 다시 시작하면 3년이 걸리고 거기서 인정받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현재 있는 곳에서 인정을 받을 때까지 견디는 게 필요합니다. 저의 재능 중 하나는 바로 견디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좋아했고 그 일을 하면서 긴 시간을 견뎠기에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게 사실입니다.

 

 

최초의 마약 검출 전문가 정희선 원장 (사진출처: 뉴시스)

 

 

Q: 소통의 시대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요?

 

저는 인연을 귀하게 여깁니다. 한 번 만난 인연이라도 귀하게 이어가려고 노력합니다.

흔히 용건이 없으면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게 일상적이지만 먼저 연락을 하고 시작을 해야 인연이 깊어집니다. 눈을 마주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온라인을 통한 소통이 흔해졌다고 하지만 온라인 소통 이전에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고, 연결을 위해 노력합니다.

 

문자((80자)메시지를 통해 내 마음을 최대한 담아 전하기도 합니다. 가급적이면 80자를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제 마음의 진심이 전해질 수 있도록 메시지를 보내곤 합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전체 이메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일주일간의 국과수 일을 공유하고, 멋진 사진 파일을 첨부하면서 공감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요. 이런 작은 노력이 소통의 끈이 된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갈등이 있는 상대와의 소통도 중요합니다. 특히 힘든 상대가 직속 상사일 경우에는 소통여부에 따라 회사 내 존폐여부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사실 조직에서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직속 상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략적으로 상사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서 맞춰주어야 하는 데 이럴 때 여성성을 살리면 도움이 됩니다. 저는 저를 힘들게 했던 상사를 위해 커피 한 잔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대접하면서 상사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상사를 만나 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제 마음을 열었고, 장점만 보기 위해 수많은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한 발 양보는 두 발 전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았습니다. 여성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도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장에서는 마음과는 별개로 일을 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중간 관리자였을 때는 명절 때마다 여성 직원들과 함께 케익을 사 들고 인사를 다니면서 상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곤 했지요. 소통도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Q: 국과수에서 34년을 견디셨는데 어떻게 시간을 견디셨는지요?

 

 

돌이켜보면 ‘세상이 나에게 맞춰 줄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이었지요. 일을 좋아했던 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답입니다. 한 때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승진을 하지 못해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승진누락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내가 있었던 자리에서도 탈락했을 때는 ’국과수를 떠나야 할 때인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당시는 부산마약사범 검출의뢰로 아침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요. 마음은 힘들었지만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화를 낼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표를 낼 시간이 없어서, 하는 일이 좋아서 그냥 하다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승진누락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는지 소장님의 위로도 있었고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견디면서 해야 할 일을 하던 저는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일에 대한 사랑, 보람이 없으면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견뎠다는 게 중요하지요. 지금 혹시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명하게 넘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Q: 일의 정의는?

 

“일은 내 일생이다. 나의 삶이었다. 나의 가장 큰 우선순위가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걸지 않습니다. 승산을 보려면 올인 해야 합니다. 정성, 열정을 모두 걸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을 하는 데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국과수에 있으면 외압이나 청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텐데 그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이 감정한 결과를 토대로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게 바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 감정서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한 분야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잘한다는 것을 객관화하는 방법은 바로 공신력을 가진 곳에서 저를 증명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김연아가 국내 빙상에서 홀로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각종 대회에 출전해 수상을 했던 경력들이 모여 지금의 김연아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일을 잘 하는 것보다 제대로 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Q:. 최초, 최고가 되기 위해 여성들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에는 실력이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나 승진을 해야 할 때는 실력 못지않게 인성이나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일 잘하는 여성들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회나 조직에서는 일도 중요하지만 관계도 중요합니다. 리더십, 배려, 네트워킹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혼자서 해 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도 능력입니다. 윗 상사를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한 홍보맨이 될 수 있도록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하지요. 결정적인 순간에 제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남자와의 경쟁에서 승부를 보려면 어떤 자세로 견뎌야 할까를 생각한다면 조금은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 한 주부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되는 게 바로 모정일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의 안배가 중요합니다. 낮 시간에는 일에 올인 하고, 퇴근하면 가정에 올인 하는 것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일에 몰입하는 힘을 키워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아이도 크게 됩니다. 자신을 믿으면서 시간을 견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과학수사 학부과정이 없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전공을 해서 개념 있는 사람이 전문가로 파견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는 범죄 현장에서도 통용됩니다. 과학수사 전문가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과학수사 박물관을 지어서 ‘과학이 쉽다. 수사에 과학이 활용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제대로 알려서 국민들이 서비스를 받게 하고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법의관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너희들은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게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 말하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정희선 원장은 가는 곳마다 여성 최초, 여성 최고의 신화를 쓰고 있다. 신월동에 위치한 국과수 부검실 이전을 항의하는 주민들을 위해 ‘과학창의교실’을 열어 진짜 소통의 해법을 보여주었던 정 원장의 꿈이 머지않은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과학수사 전문 인력 양성으로 우리가 받게 될 서비스가 바로 그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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