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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왕네트워크 오사카를 가다] 셋째날 6세기 백제를 느낄 수 있는 아스카데라 절(비조사), 자료관 by 지식소통 조연심

지식 칼럼/지식여행

by 지식소통가 2014. 3. 2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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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백제를 느낄 수 있는 아스카데라 절(비조사)과  자료관을 찾았다.

 

돌무대가 있던 곳에서 동네를 가로질러 한 참을 걸은 후 만나게 된 절터는 굉장히 넓었고 아스카 절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절을 지키는 불상의 위용은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했다.

 

아스카사의 기원

 

아스카사는 588년 소가노우마코의 발원으로 596년에 창건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서 호코지, 켄코지, 아스카데라(현재는 안고인)라고도 불려졌다. 1956년의 발굴조사에 따르면 창건 당시의 절은 탑을 중심으로 동서쪽과 북쪽에 각각 금당을 배치한 일본 최초의 본격적 사원으로 바깥쪽으로는 회랑이 둘러져 있으며 강당도 있는 장대한 가람이었다 한다.

 

옛 가람은 887년과 1196년의 화재로 소실되어 무로마치 이후에는 폐허상태였으나 1632년과 1826년에 재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진언종 토요야마파에 속한다. 긴키자방을 중심으로한 33곳의 사찰순례지 중 9번째 순례지이며 쇼토쿠타이시 영지순례지 중 11번째 순례지이다.

 

 

 

 

 

절의 보물

본존아스카불상(석가여래좌상) 동상 중요문화재

 

본존아스카불상은 605년 천황과 쇼토쿠타이시, 소가노우마코 및 각 왕자들의 발원으로 609년에 구라쓰쿠리노도리(도리불사:백제계 도래인 시바타쯔토의 손자인 말안장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당초엔 금당의 불상은 양측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거느린 석가삼존이었다. 높이는 약 3미터로, 당시 동 15톤과 황금 30키로그램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헤이안, 가마쿠라시대의 대화재로 전신이 불에 타 후에 보수되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아스카 조각미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세부적으로도 상당히 확실한 아스카의 특색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불법흥륭의 의미에서 호우코우지 절 혹은 불법이 원흥하는 절의 의미인 간코우지 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또한 아스카땅에 세워졌기에 아스카데라 절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아스카데라 절은 일본에 있어서의 정식 불교의 시작이 된다.

이 절의 탑 건축에는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의 사리가 수장되었고 지붕의 기와는 백제계의 기와가 사용되었다.

아스카데라 절은 백제와 고구려 문화의 은택과 당시 일본문화이 향상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현재의 아스카데라 절은 폐허에 가까운 작은 절이지만 불가의 가르침인 자비와 진리로 묶어진 종교적인 심정으로 한일 양국의 우호와 불법흥륭과 만물의 평화를 위한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아스카데라 절 주지 야마모토 호우준은 밝혔다.

 

본존의 우측에 12세기 후반의 아미타여래상을, 좌측에 쇼우토쿠태자 16세 상을 안치하고 있다. 특히 태자가 15,6세 무렵에 이곳 아스카데라 절이 건립되기 시작했고 백제의 혜총법사와 고구려의 혜자법사가 처음으로 아스카데라 절에 체재하며 쇼우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아스카데라 절을 나와 자료관까지 가는 길에는 당시 수로를 이용해 만든 시계탑을 볼 수 있었다.

나라현 아스카 절 터 인근의 자료관에서는 6세기 백제의 흔적을 확인해볼 수 있는 유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불교전래비문이 있는 사쿠라이시행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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