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완도로 이동...
지난 4월 세계 슬로우 걷기 축제로 이미 눈에 익었던 바닷가쪽에 위치한 장보고 모텔에 자리를 잡았다. 완도와 각별한 사이가 된 시드로직의 신영석 대표의 도움으로 성수기라 자리도 없었을 숙소를 특별한 가격으로 묵게 된 것이다. 인맥의 도움을 톡톡히 본 여행이라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짐을 풀고 급하게 달려간 완도수목원...
입구에서 입장하려고 하던 우리를 막아선 안내요원의 말인 즉,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어쩔 쭐 몰라하던 우리를 보고 잠시 들어가서 보고 나오라고 특유의 전라도 인심 후한 모습을 보여 주던 아저씨... 덕분에 입장료 8,000원여를 아끼게 되었다. 가끔은 마감 직전에 생각지도 않은 행운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서둘러 수목원을 둘러보아야 함에도 우리의 여유로움은 아마도 그 곳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곳이 다려니 싶어서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결국은 절반도 구경 못하고 마감시간을 지켜 되돌아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도 공짜로 들어왔기에 그 정도 구경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을 위안삼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세상에 공짜는 없음을 또다시 배운다.
이제 산길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아이들을 앞세우고 또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가급적이면 평지로, 기왕이면 가까운 곳으로 돌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래도 오늘은 양말에 운동화까지 단단히 챙기고 오르는 길이라 어제보다는 한결 수월한 발걸음이다. 깊게 들이쉬는 숨속에 가득 차오르는 초록의 상쾌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몸 속 구석구석까지 깨끗해지는 기분... 아! 상쾌하다.
수목원 숲 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 어찌보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다. 같은 곳에서 보더라도 해를 보고 찍는 것과 등지고 찍는 것의 느낌과 모양이 이렇게 다름을 어찌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말하더라.. 우리 눈만큼 정확한 렌즈가 없다고 말이다. 그 순간 내가 본 하늘의 청명함은 이미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본 것이라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수목원의 반만이라도 제대로 돌자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우리를 시원한 계곡은 강하게 붙잡아 이끈다. 이마 위로 송글송글 맺혔던 땀도 바위와 바위 사이를 유연하게 흘러 내리던 강물 소리에 그대로 멈춘 듯 하다.
"아 ! 시원하다~~"
역시 우리의 정서에는 산과 계곡이 제 멋인가 보다. 우리 조상들이 발을 담그고 먼 하늘을 올려다 보며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며 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경치가 한 몫 했을 듯 싶다.
작은 딸 지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온실만큼은 봐야 한다고 해서 또다시 산을 오르고 올라 도착한 온실은 그야말로 찜질방 그 자체였다. 후끈 달아오른 온기 속 여기저기 보이던 선인장의 위용은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또다른 증거가 아닐까. 결국 천장에 매달려 거꾸로 펴 있던 꽃 하나 찍고는 도망치듯 달려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산 정상에서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한 점... 가슴까지 시원해지던 그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산 해설가라는 명찰을 달고 계신 분이 해 주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소나무 아래에 들어가 보세요. 너무 시원하답니다. 그리고 소나무는 3대가 한 나무에서 살고 있답니다. 할아버지는 2년 전에 펴서 갈색으로 변한 솔방울이고 작년에 초록색으로 굵게 자란 솔방울이 아버지이고 이제 막 꽃을 피운 것이 올해 나온 자식이랍니다. "
소나무 한 그루에 3대가 살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들으면서 우리네 인생과도 참 많이 닮았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송진을 내뿜어 나쁜 벌레들의 공격을 막아준다고 하는 소나무의 지혜가 우리 어버이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 것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있는 곳을 떠나야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