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녹차밭을 뒤로 하고 해남 쪽으로 차를 몰아 정약용이 유배를 했던 곳, 다산초당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6시 쯤... 한적한 동네 안 쪽에 자리잡고 있는 다산초당! 표지판만 보고는 아주 가까운 곳이라 여기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지고 나면 초록빛은 그 깊이를 더하나 보다. 녹색의 푸르름이 눈이 시리도록 다가온다고 하면 공감이 가려나 싶다.
주차장을 벗어나서 표지판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그 끝이 아득한 나뭇길이 나온다. 길 끝에는 분명 기다리던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나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빨려들듯한 길의 유혹에 나도 모르게 눌러대던 카메라! 그 덕에 무섭게 공격해대던 모기들의 매서움도 잠시 잊어 버렸다. 물론 그 후에 다리 곳곳에 모기들의 흔적들로 괴로움을 견디기 힘들었음도 잊기 어려운 추억이 되었다.
산길 초반에 보이던 이 집이 다산초당인 줄 알고 신나하던 애들과 나는 잠시 후 여기가 여관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실망하던 애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역시 슬리퍼와 쪼리를 신고 산길을 따라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곳으로 끊임없이 올라갔다. 나무가 무성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어두컴컴하던 산길과 나무뿌리들이 땅위로 어지럽게 솟아있고 거친 바윗돌이 여기저기 드러나 있음을 보며 다산 정약용이 역시 유배를 온 것이 확실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멀리 산위에서 보이던 희미한 불빛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 저기 불 보이잖아" 하면서 재촉하는 내 목소리도 그다지 힘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가슴이 오그라드는 무서움이 나라고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그렇게해서 오른 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다산 초당, 후진들과 지인들이 머물면서 목민심서를 집필했다던 동암을 지나 백년사로 가는 언덕에서 찾은 천일각... 그 곳에서 보이던 바다의 풍경은 저절로 시인이 될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유배를 왔음에도 경치 만큼은 최고라 할만한 남해에 자리잡을 수 있었음은 비록 주위 신하들의 모함(?)에 못이겨 멀리 귀향을 보내더라도 산좋고 물좋은 곳에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좋은 글을 쓰라는 임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자에 올라 멀리 보이던 풍경을 보며 "좋다~좋다"를 연발하던 애들을 보며 마음으로 보면 아름다움이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공감이 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