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 해녀마을을 지나 오후 일정으로 비자림을 택했다.
결혼 20주년 이번 여행의 컨셉은 "잠시멈춤"으로 정했다.
결혼 후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가 20주년을 맞아 잠시 멈춰서 그동안 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생각해보자는 의미였다.
걷고, 쉬고, 먹고 그리고 대화하고...
비자림에 도착하자 1시 정도였다. 극도로 피곤했던 남편은 주차장에서 한숨 자기로 하고 나는 일단 매표소에서 1,500원을 계산하고 홀로 비자림을 걸었다.
천년의 숲 비자림
비자열매와 나무는 예로부터 민간과 한방에서 귀중한 약재와 목재로 널리 쓰인다.
나뭇잎이 아닐 비非 자처럼 난다고 해서 비자라 일컫는다.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는 비자림은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하여 자생하고 있다.
비자림은 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등 희귀한 난초식물 및 초본류가 140여 종, 생달나무, 아왜나무, 머귀나무 등 목본류 10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녹음이 짚은 울창한 비자나무 숲속의 삼림욕은 피톤치드가 풍부해 혈관을 유연하게 하고 정신적, 신체적 피로회복과 인체의 리듬을 되찾는 자연건강 휴양효과가 있다...
피톤치드가 풍부한 비자림을 걷는 초입은 송이길이라 하여 화산 부스러기 돌맹이인 화산송이로 되어 있다.
바삭바삭... 마치 과자 밟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풀들이 서로 부대끼는 소리들과 간간히 들리는 풀벌레, 새소리들로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한다.
그렇게 홀로 걷는 동안 내 안의 나와 만날 수 있게 되는 길. 비자림
반짝반짝 빛나는 나뭇잎들과 햇살 가득 머금은 숲속 길 거기다 이름 모를 들꽃과 들풀들이 내 발길을 반긴다.
비자림을 걷다 보면 돌멩이길과 만난다.
결혼 생활을 하다가도 험한 자갈길 같은 길을 걷는 기분일때가 많다. 그것을 아는 걸까?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다가도 균형을 잘 잡아가다보면 어느새 평평한 길이 나타나게 된다.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비자림... 산소 가득한 맑음이 몸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돌멩이길이 끝나고 조금은 평탄한 길을 걷다보니 왠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기분좋은 시끄러움...
비자림에는 박새, 노랑턱멧새, 삼광조, 팔색조, 동박새, 제주큰오색딱따구리 등이 산다고 한다.
아주 작은 그렇지만 시끄러운 박새를 본 것 같다.
새소리 가득한 비자림 숲길...
새 소리에 정신을 팔리고 걷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연리목과 새천년 비자목이 있는 곳의 두 갈래 길..
우선 천 년 가까운 시간을 견딘 비자나무를 보고 싶었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최고령목으로 824년된 나무다. 21세기 제주특별자치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나무로 키 14m, 가슴둘레 6m, 수관폭은 15m다. 국내의 다른 비자나무와 도내의 모든 나무 중 최고령목으로 지역의 무사안녕을 지켜온 숭고함을 기리고 희망과 번영을 구가하는 새천년을 맞이하여 2000년 1월 1일 새천년 비자나무로 명명하였다.
1시간을 넘게 자고 온 남편.
다시 함께 돌아야 한다고 해서 나는 비자림숲을 두 바퀴 돌았다.
새천년 비자나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아직도 잠이 덜 깬듯 얼떨떨한 표정이 영 그렇네.
숨을 들이마시고 피톤치드 가득한 맑은 공기를 맘껏 즐긴 후 타박타박 두 바퀴를 돌은 비자림...
제주에서 만난 초록만발의 선물같은 곳이었다.
결혼 20주년...
잠시멈춤의 장소로는 최상의 장소 중 하나로 추천하고 싶다...
가을 비자림은 어떤 빛일까?
행복한 걷기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