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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e-사람] 지성과 감성의 융합, 대한민국 프리랜서의 대명사 이근미 작가를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소통인터뷰 & 토크쇼/조연심이 만난 e-사람

by 지식소통가 2013. 4. 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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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e-사람] 지성과 감성의 융합, 대한민국 프리랜서의 대명사 이근미 작가를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대통령, 배용준, 국회의원, CEO, 작가, 프리랜서

대한민국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 중 이 사람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시사잡지 인터뷰 기자로 활동하면서 예리한 지성과 날카로운 필력으로 20년 가까운 시간을 견뎠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성향인지를 한 눈에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거기에 감성적인 글과 그간의 경험이 어우러진 소설을 쓰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유력한 월간지 객원기자이자 소설가로, 때론 교수로 맹 활약 중인 이근미 작가. 지천명의 나이를 넘었음에도 당당히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비법에 대해 물었다.

 

작가 , 기자, 프리랜서 이근미

 

재능을 찾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전학 간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라고 해서 어린 마음에 헤어져서 서운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쓴 편지를 반 친구들 앞에서 읽어 주셨다. 내가 듣기에도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각반의 우등생을 모아 글쓰기 훈련을 시켜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다. 10번의 대회에 나가 10번 모두 입상을 한 사람은 전교에서 나 하나였다. 울산 전체에서 차상(지금의 2등상)을 비롯하여 어지간한 상은 모두 휩쓸었다.

중학교 2학년, 반 모두가 반성문을 써야 했었다. 우리가 쓴 반성문은 교실 뒤 게시판에 공개되어 있었다. 시험을 보는 중에 시험감독을 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이근미를 불렀다. 그러면서 하는 말, "너 문학성 있다. 앞으로 소설가가 되어라."

 

 

그 때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하지 않은 나에게 글 쓰는 재주는 아무 도움이 되질 않았다.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웠고 3년 연속 음악대학에 낙방을 하며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버렸다. 그리고 기억하게  된 것이 내가 글쓰기를 좀 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는 이론 70% + 실기 30%였고 나는 글은 좀 쓴다는 착각 하에 열심히 공부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글 쓰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던 상황인지라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쓰며 지금까지 살았다. 그나마 내가 좀 잘하는 분야를 활용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게 된 셈이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졌던 이근미 작가

 

 

 

글 쓰는 능력은 어떻게 훈련하고 있는가?

 

여자로서 정통 시사잡지에 많은 양의 원고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10년 이상을 월간지 객원기자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사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숙련되는 것처럼 매달 취재와 인터뷰를 하며 논리와 팩트(Fact)를 보는 예리한 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은 장편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 거기다 내가 만나 인터뷰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상위 1%라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언제나 살아 있는 강의를 듣는 것처럼 유익하고 자극이 되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17>,<어쩌면 후르츠 캔디> 외에도 자기계발서/ <+1%로 승부하라>, <프리랜서처럼 일하라> 를 쓰는 작가가 되었다.

 

되돌아보면 나의 글쓰기 훈련은 매달 마감일(데드라인)이 있는 기사를 위해 끊임없이 쓰고 또 쓰면서 자연스럽게 훈련되었다. 소설가로서, 기자로서의 경험과 글쓰기는 예술적 문장을 창작하는 데는 단점이었으나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경험한 것들이 소설에 활용되면서 풍부한 글의 소재를 찾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 되었다. 거기다 시대가 바뀌면서 대중성이 가미된 소설이나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얻으면서 나의 작가로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근미의 <프리랜서처럼 일하라 >

 

 

 

,오프라인으로 소통하는 법은?

 

소설이나 시인과 같은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일명 순수병이 있어서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로지 글과의 소통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통이라 말하고,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사잡지 객원 기자생활을 20년 이상 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온라인 소통이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것이다. 2002년 유학하던 동생과 함께 만든 홈페이지는 주변 기자와 작가들에게도 좋은 소통의 창구가 되어 주었다. 게시판에는 양질의 유머들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하루에 조회수가 1,000명을 넘는 영향력 있는 온라인 소통창구였다. 그러다 2006년 로그인 제도가 생기고 홈페이지 유입율이 떨어지면서 나의 온라인 소통은 침체기에 들어갔다. 그 후 소설 [17]가 당선되고 전업작가 흉내를 내면서 다시 외부와의 소통을 시도하게 되었다. 결국 나의 소통은 꾸준하게 기고하고 끊임없이 써 내려갔던 글을 통해 이어질 수 있었다.

 

 

 

 

강연 중인 이근미 작가

 

방송 중인 이근미 작가

 

북TV365 MC들과 함께 하는 이근미 작가

 

 

시간을 견디는 지혜는?

 

사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너무 바빠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일을 의뢰 받았고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 자신만만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소설을 쓰고 자기계발서를 쓰면서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독자들에 의해 교만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모태신앙인인 내가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작가라는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도의

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7년을 한결같이 새벽기도를 하면서 나를 단련시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이근미 캐리커처

 

 

내 인생의 최고의 때(Timing)?

 

   늘 바로 지금(NOW)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지천명이라 불리는 나이를 지나가고 있음에도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거기다 나이가 드니 자잘한 일은 알아서 끊어지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작가로서 돈을 많이 벌면 후진양성에도 힘을 쏟고 싶다. 앞으로도 지금, 현재가 최고의 때라 생각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을 쓰는 작가로 살고 싶다.

 

 

 

글을 통해 보는 그녀는 결코 나이 들지 않는 소녀의 감성 그 자체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자 기자인 이근미. 세상과 소통할 줄 아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가슴 시원한 후련함이자 통쾌한 경험이다.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통해 이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버무려낼 수 있는 이근미 특유의 글맛을 알기에 앞으로 그녀가 선보일 작품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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