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e-사람] CJ의 여성임원을 지낸 실력파 코치 김상임을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
전문성을 나타내는 블랙Black과 열정을 상징하는 레드Red가 잘 어울리는 여자, 똑 부러지는 카리스마와 따뜻한 감성이 조화로운 여자, 칼 같이 시간을 잘 지키는 여자, 꿈의 직장인 삼성으로 입사해서 CJ에서 여성 임원을 지낸 여자이자 기업임원 전문코치로 활동하는 김상임을 만났다.
손 대는 일마다 척척 해내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김상임 코치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물었다.
재능(Talent)을 찾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 작문실력이 있었다. 초, 중등 시절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면서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대학시절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교수님의 ‘삼성에 들어가라’는 조언에 선생님의 꿈을 접고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 시절에도 삼성을 입사하기 위한 첫 관문이 영어시험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영어공부에 몰입한 결과 운 좋게 합격하고 기획실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삼성에서는 ‘일본기업 및 시장 벤치마킹’을 통해 많은 경영활동을 했던 터라, 일어를 전공했던 나는 일본시장을 리서치하고 일본 시장 동향을 알기 위해 원서를 번역하여 기획서로 요약하는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맨 처음 B4 전산용지에 연필로 작성한 기획서는 담당 과장에 의해 새빨갛게 피바다가 되어 되돌아 오곤 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쓰고 또 쓰고를 반복하면서 기획서 쓰는 노하우가 늘게 되었다. 글을 쓰는 로직logic이나 기업보고서의 ABC, 리포트의 기승전결 등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만큼 잘 하게 되었다. 신입 초기 일본 관련 기획서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키워진 재능이었다.
그러다 90년대 초중반부터 “Global Standard” 바람이 불면서 대상이 일본보다는 글로벌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일본중심 업무영역이 기획관리 영역으로 바뀌면서 대리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숫자와 씨름하는 부서였다. 나는 주경야독으로 재무제표, 온라인 재무 회계,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꾸준하게 공부한 결과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재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나는 회사에 MBA 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CJ의 핵심인재들만 가는 과정이었다. 결국 CJ Kaist MBA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업 컨설팅, M&A 업무, 기획, 전략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CJ그룹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팀장 보직을 발령받았다. 2003년이었다. 신규사업을 검토하고 기업인수 등을 추진하는 부서였다. 현업에 대한 동경이 컸다. 한 회사의 기업인수를 성공시키면 계열사로 보내달라고 조심스레 떼를 쓰기 시작했고, 결국 S어묵 인수를 성공하고 계열사로 발령을 받았다. CJ 푸드빌의 CFO로 갈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VIPS 현장 사업부장으로 발령이 났고 운영, 실무, 교육 등을 담당했다. 2008년 초 바닥이었던 VIPS의 실적이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무로 발령받았다.
나의 재능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랑하고 사랑 받는 능력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도 찾았다. 만나는 순간에 충실하고 필요한 교육을 통해 서로 상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에 찾게 된 능력이었다. 나의 이런 재능은 CJ라는 회사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25년간 성실한 충실함이 있기 때문에 키워질 수 있었다.
어떻게 훈련(Training)을 해 왔는가?
나는 지금의 자리까지 필사의 노력을 통해 올 수 있었다. 재직 시절 온라인 강의를 수강할 때 나는 모든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를 했다. 새까맣게 채워지던 노트의 두께만큼 나의 재능은 탄탄하게 훈련될 수 있었다. 거기다 실전으로 활용하기 위해 자신이 배운 것을 가르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가르치면서 제대로 배우게 된다는 것을 실천한 것이다.
비전설계, 기획서 만들기, 현장 중심 리더십, 코칭 등 내가 배우고 익혔던 것들을 교육을 통해 다시 전달하는 식으로 나는 나를 훈련했다. 그리고 회사 돈으로 받은 교육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서 하부 구성원에게 전수했다. 전수하면서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그들을 보면 많은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뭐든 열심히 적는 김상임 코치
온,오프라인으로 소통(Talk)하는 법은?
신입, 대리 시절에는 소극적이고 까칠한 나만의 세상에서 살았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시절이었다. 그러다 승진을 하면서 조직관리를 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나와 결별을 해야 했다. 부하를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부하를 모셔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VIPS 현장에 갔을 때 나의 현장경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많은 간접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브레인스토밍과 시너지 경영을 시도한 결과 직원들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소통도 가능할 수 있었다.
내가 한장 일하던 시절에는 멘토가 없었다. 나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책을 찾았다. 이론으로 배운 지식에 현장의 경험을 더하면서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거기다 모성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여성 리더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가족사에 대한 관심, 생일을 챙겨주는 등의 사소한 일들이 사람들에게 인간미 넘치는 리더로 인정받게 되면서 소통의 기반인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일은 Logic하게, 관계는 이모처럼” 이 모토였다.
거기다 나는 포커페이스가 아니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얼굴에 다 드러났다. 솔직히 표정관리를 못 하는 게 단점일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평면소통’이라 하여 보이는 게 다인 리더로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화를 많이 내고 표정이 굳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요즘 왜 그렇게 한숨을 많이 쉬니? 무슨 일 있어? 한숨이 날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
엄마의 조언으로 나는 화가 날 때마다 휘파람을 불었다. 직원들은 내가 휘파람을 부는 날이면, 주변 경계령을 내리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시간(Time)을 견디는 지혜는?
나는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지 않고 현재 있는 순간에 집중하곤 했다. 그 동안 근무하면서 두 번 사표를
낼 만큼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일 자체는 재미있었다. 시간을 견디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일 자체라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일 때가 많다.
입사초기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변경이 되었을 때도 나는 가장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다.
오기를 부린 것도 사실이지만 그냥 일 자체에 몰입하는 나의 본성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 목표점’을 향해 몰입하게 되면 어느새 일은 해결 되어 있고 시간도 지나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되돌아 보면 여유롭게 미래를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힘들어도 위로를 할 시간이나 멈춰서 쉴
틈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과 직장생활 모두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에 나는 늘 바빴던 것 같다.
정글의 사자와 사슴이 그러하듯이 나는 달려야 살 수 있었기에 무조건 달렸고 덕분에 고민할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내 인생의 최고의 때(Timing)는?
남들보다 익사이팅(exciting)한 직장 생활이었지만 그런 대로 평범한 삶이었다. 삼성 입사 소식을 접한
그 순간이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그리고 무대(Stage)위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나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낼 때, 상대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순간 순간들이
내 삶의 최고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도 항상 내편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가족들과 지내는
순간이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다.
영향력 있는 코치로서 다른 사람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 놓는 순간도 내가 꿈꾸고 바라는
나의 때Timing이다.
김상임 코치
“세상은 나 홀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의 나를 믿으면 그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상임 코치.
‘김상임! 너는 잘 될 거야’라는 긍정의 앵커링anchoring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를 먼저 깨우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나, 나와 타인, 타인과 타인 자신의 행복을 찾아주는 슈퍼 컨넥터(Super Connector)를 꿈꾸는 김상임. 될 때까지 몰입하고 지독하게 공부하는 그녀의 근성대로라면 그 꿈도 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