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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e-사람] 갈리나 선생이 되고 싶은 피어 에비뉴 대표 & 발레리나 윤선형을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소통인터뷰 & 토크쇼/조연심이 만난 e-사람

by 지식소통가 2012. 9. 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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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의 꿈을 꾸던 어린 신데렐라가 어느덧 다른 발레리나의 등불이 되어 있었다. 발레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자신의 제자들이 마음껏 발레를 하고 재능을 불사를 무대를 직접 만들겠다 다짐을 하고 공연과 음식의 만남이 가능한 피어 에비뉴를 인수하고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전통을 살리기 위해 우먼스를 창단하기도 했다. SH 발레단을 운영하고 발레리나가 서빙하는 피어 에비뉴를 경영하는 발레리나 윤선형 대표를 만나보자,

 

발레리나 윤선형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piersh/

 

 

1.    재능을 찾은 계기는 언제인가요?

 

어릴 때 춘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었어요. 2학년이었을 겁니다. 무용할 사람 손들라는 말에 뭔지도 모르고 손을 들었는데 그게 바로 무용의 시작이었어요. 사실 모든 집안이 법대, 회계, 행정이었는데 나만 다른 길을 걷게 된 시초였습니다. 언니가 선화예중을 다니면서 성악으로 시험을 준비했어요. 선화예술학교 주변에 집을 얻을 정도로 아버지의 기대가 컸었죠. 하지만 제가 무용하는 것은 반대하셨어요. 초등학교 시절 엄한 아버지 때문에 방에 갇혀있기도 했는데 엄마가 창문으로 나를 구출해서 공연장으로 데려다 주시곤 하셨어요. 몸으로 하는 것은 딴따라라 오해받던 때였지요.

그런데 엄마는 저의 재능을 알아 보시고 리틀엔젤스 시험을 보게 해 주셨어요. 포인을 해 보라고 해서 했는데 잘 했는지 합격을 했답니다. 그게 한국무용을 하다가 발레를 하게 된 계기였어요. 3때 유니버설 창단 후 신데렐라를 시작하게 되었고 프로발레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발레리나로서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대학에 가길 원하셨지만 나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그 때 너는 머리가 있으니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다시 발레단에 오라고 하는 델라스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대학을 가게 되었어요. 졸업 때 국립 발레단 연수 단원이 되었고 볼쇼이로 서정자 교수님을 통해 유학을 가게 되었지요. 소련에서 쿠테타 직전까지 즈다노프 선생님 아래서 1년 정도 배울 수 있었는데 선생님은 언제 오더라도 유니버설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답니다. 그 후 문훈숙 단장님 아래서 발레단 생활과 학생을 가르치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반대하던 아버지도 이화여대를 합격하고 나니 인정을 하셨어요. 공부가 1등 아니면 꼴등이라 생각하시던 분이었는데 무용으로 이대를 들어갔던 것을 인정했던 것 같아요.

 

발레를 하던 시절 신체조건이 포인이 잘 되고 점프 능력이 좋다고 뉴욕 타임즈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빨리 순서를 외우니까 선생님들이 좋아하셨어요. 모두들 순발력이 좋다고 하셨어요. 그러다보니 앞에 세워지고 남들보다 우세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 선생님 앞이라 부끄러울 것도 없었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배울 수 있었지요. 그 시절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어떻게 훈련하셨나요?

 

계기가 있었어요. 3 때 몸이 좀 불었어요. 고등학교 올라갈 때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몸이 불어 발레를 할 수 없다고 좌절하고는 현대무용으로 전과해 가게 되었지요. 그 때 드레이튼 선생님이 한 달만 노력해보고 그만두려면 그 때 그만 두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새벽 6시에 학교에 가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나를 찾기 시작한 순간이었어요. 대학 때도 슬럼프가 오면 새벽 레슨을 하고 가장 늦게 나가고 하면서 나 스스로 도를 닦을 수 있었답니다. 생각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니까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이 잘 돼서 목표하는 대로 지켜낼 수 있었고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춤 실력도 늘게 되었답니다. 최선을 다해 본 후 그만 두어도 늦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중학교 시절에 찾은 거지요. 무조건 하면 안 되는 게 없고 설사 안 된다 하더라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행복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지요.

 

어려운 동작에 필요한 테크닉은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안 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못 하면 노력부족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코디네이션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 하는 것 같아요. 춤출 때 이루어지는 감각적인 움직임, 느낌, 감정을 종합하는 능력이 바로 코디네이션이거든요. 테크닉이 아무리 좋아도 코디네이션이 부족하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렇지만 경험을 많이 하면 코디네이션도 좋아집니다. 여행을 다닌 사람과 안 다닌 사람의 감각의 차이라고 할까요. 진짜 참 맛을 아는 것과 모르면서 표현하는 것의 차이지요.

 

즐기고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1시간을 훈련하더라도 10시간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어요.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요. 10시간을 해도 1시간 연습한 효과밖에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훈련을 하다 보면 아무리 연습해도 불가능한 경우가 생기는데 그럴 때에는 상처를 받을 수 있어요. 정신적으로 강해야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동시에 해야 하는 거지요. 강해 보이는 것은 훈련을 통해 나옵니다. 연습을 하면서도 정신적 훈련을 해야 효과를 낼 수 있어요.

 

대학 때 홍정의 교수님이 너무 많은 조언을 해 주셨어요. 들어가자 마자 1등 인간, 2등 인간, 3등 인간이 있다고 하면서 생각과 몸이 일치하면 1등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에 그런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평균80%의 에너지를 쓰고 간다고 해요. 1-2%만 더 쓰고 살아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맨 앞에 서지 말고 맨 뒤에 서면 모든 것을 보면서 갈 수 있다. 그러니 급하지 않게 살아라. 저는 훈련을 하면서도 즐기려고 노력했고 정말 즐거워졌답니다.

 

 

3.    소통을 하는 나름의 방법은요?

 

발레 아닌 다른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프로 무용 출신이 학교에 가서 교수가 되거나 다른 잡을 구해서 하는 과정이 같은 전공이라도 극소수라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어 에비뉴를 선택하니 많은 것이 다시 채워졌습니다. 우먼스는 제2의 직업 무용수가 도약할 수 있는 매니지먼트를 하는 곳이고 그것을 통해 또다시 무용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만들고 싶었고 예술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피어 에비뉴 공연과 길거리 공연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식과 문화가 함께 하는 청담동 피어 에비뉴

 

음식과 무용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 자체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우먼스를 통해 다양한 소통의 매니지먼트가 가능하게 되었지요. 피어 에비뉴에서 음식과 공연의 중간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게 내 운명이지 싶습니다. 발레를 넘어 문화예술의 대중적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고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용수의 위상을 올리고 싶어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은 거지요.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커져야 저를 보고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웃으며 온,오프라인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4.    시간을 보내는 노하우는?

 

찜질방 가서 땀 흘리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합니다. 봉춤도 추고요. 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운동으로 풉니다. 움직이다 보면 정리가 된다는 진리를 중학교 시절 깨달았거든요. 매사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즐기자 하면서 합니다. 긍정적이고 잘 까먹고 그래서 일이 잘 되는 것 같아요, 힘들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삽니다. 불가능할 거라고 하는 것을 하니까 주위에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많아지고 그렇게 되니 즐겁게 살게 되더라구요.

 

5.    타이밍은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유학 갔을 때 토슈즈 발가락에 빵꾸가 날 정도로 하루 10시간씩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았거든요. 발가락이 곪아서 빵구가 나서 고름이 났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몰입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나의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인생 진로를 결정할 때 무용을 하던 친구들이 다른 운동 선수만큼 대접받는 때를 만났을 때가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발레는 하루라도 쉬면 안 되는 운동입니다. 매일 5시간 이상 연습해야 그 기량이 죽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거지요. 힘들게 지켜온 만큼 다른 프로선수들처럼 프로 무용수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발레는 천재적일 수 없습니다. 최고의 무용수는 죽을 만큼 연습을 해야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몸을 타고 났다 하더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루에 32바퀴를 10번 이상 돌아야 프린스플, 발레리나가 될 수 있답니다. 무대 위에서 감동을 주는 순간을 연출하려면 끊임없이 연습해야 합니다.

 

 

 

 

68세 갈리나 선생처럼 되는 것이 바로 나의 마지막 꿈이라고 말하는 윤선형 대표. 발레리나는 언제나 몸을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흐트러트리지 않아야 하기에 체형이 예쁜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프로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사람은 완벽해야 누구를 가르칠 수 있기에 오늘도 열심히 몸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내가 커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그녀의 말처럼 프로 무용수들에게 꿈을 열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하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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