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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e-사람] 향토요리연구에 바친 60년, 우리맛연구회 박영자 소장을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소통인터뷰 & 토크쇼/조연심이 만난 e-사람

by 지식소통가 2011. 11. 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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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음식문화교류전, 박영자님



요리가 삶이고, 삶 자체가 요리다. 그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딸 여섯 중 셋째로 태어나 친정어머니가 차리는 제삿상에 관심이 많았던 박영자 소장(35년생)은 또래 아이들이 음식 먹는 것을 즐기던 때에 음식 만드는 것 자체를 즐겼다. 17살 때 친정어머니가 제사 전 날 집을 비운 사이 손수 장을 봐서 제삿상을 차려놓았다. 그 상을 보고 큰 어머니들과 친정어머니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이 차리던 것과 같은 완벽한 상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눈썰미가 좋고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박영자 소장의 첫 데뷰 무대이기도 했다.  불심의 영향으로 수행하듯 홀로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박 소장은 집안의 제삿상을 홀로 다 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방 쓰는 것까지 배웠다. 그러다 전주 음식의 전조라고 할 부안에 일년이면 15번의 제삿상을 직접 차려야 하는 외며느리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요리박사인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는데 그 덕에 박 소장은 다양한 음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사진출처: 전북의 재발견 http://blog.jb.go.kr/130123780277

얼마 전 1 2일의 이승기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쳤는데 그 중 홍시겉절이가 바로 시할머니께 전수받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김치 중 하나였다. 설탕이 귀했던 시절 당도가 높은 홍시를 양념으로 써서 한 겨울 생생한 김치 맛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홍시겉절이였다. 요리 시작 전 이승기가 장갑을 끼려 하자 요리는 손맛이 중요하다며 엄하게 꾸짖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이 김치의 간을 맞춰주어 감칠맛 나게 하는 천연재료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방송 후 요리를 좋아하는 이승기가 개인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군에게 자금을 조달했다는 이유로 일본 순사에게 붙잡힌 아버지에게 밥을 해
 드리곤 했는데 어린 박 소장의 귀에 당시 지서의 철문 닫히는 소리가 쿵 하고 가슴 속 깊이 남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1986년부터 교도소 재소자들의 재활을 돕는 직업훈련을 직접 하게 되었다. 1년 여의 무료강의가 끝나자 이듬해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댓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닌데다 막상 표창을 받으면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몇 번을 사양했을 정도로 박 소장은 큰 욕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베푸는 것 자체를 즐기면서 살 뿐이었다.

연변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박영자 소장님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을 돌며 전주비빔밥과 전라도김치를 전하는 박영자 소장은 중국 연변대학에서 5년간 무상으로 초청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고마움의 표시로 강의를 받던 사람들이 준비해 준 소박한 식재료들이 두 상자 가득 채워진 것을 보고 그 마음이 고마워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었다고 박 소장은 말했다.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신 박영자 소장님, 감사드립니다.

 

 

 박영자 소장은 2009년부터 향토요리연구소가 바뀐 우리맛연구회에서 음식을 좋아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잘하는 요리를 돌아가며 강의하고 함께 맛을 연구하는 모임의 대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박 소장은 사진찍기도 좋아해서 스스로 뽀삽까지 할 정도다. 시와 시조로 등단한 박 소장은 내년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을 낼 계획이란다. 만다린, 하모니카를 배우고 삶을 즐기며 사는 그녀는 요리를 가르치는 제소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요리하는 방식으로 살면 죄 짓지 않고 살 수 있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칼에 벤 상처를 보여주는 박영자 소장님, 오른쪽은 오징어로 만든 봉황작품이다.



 60년 가까이 요리와 함께 한 박영자 소장은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았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며 일에만 몰입하는 젊은이들에게 나이 들어 즐길 수 있는 취미 한 두개 쯤은 배워두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은 명인도 그리 유명한 사람도 아니라며 그저 요리 그 차체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매주 월요일 컴퓨터로 주변 지인들에게 보내는 격언 한마디로 한 주의 행복을 선물하고 있는 박영자 소장은 전주비빔밥과 전라도김치를 대표하는 전주의 명인 중 명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앞으로도 전주 향토음식의 맛을 전세계에 널리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끝으로 행복한 인터뷰를 마쳤다.

 

[나는 브랜드다]에 사인을 해서 박영자 소장님께 선물로 드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브랜드다]에 서명을 해서 전해드렸는데 너무 고마워하셨다. 선생님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 이상임을 알게 된 나는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앞으로 계속 내 삶을 기록하며 살다보면 분명 명인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주려고 노력할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즐길 것,,,
그리고 긴 시간을 견뎌낼 것,,,

한 평생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바친 박영자 소장님을 통해 명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박영자 소장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

다이어리알 이윤화대표 소개로 전주시와 전주대학교 산학협력 전주음식 스토리텔링, 명인인터뷰에 제공된 인터뷰입니다. 온라인브랜드디렉터 강정은 양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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