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가 아닙니다. 다시 확인 후 입력하십시오.’
벌써 4번째 비밀번호 오류다. 오랫동안 휴면상태였던 메일을 열어보려니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흐린 기억을 더듬어 몇 차례 비번을 넣어보지만 좀처럼 나라는 사람을 확인해 주지 않는 계정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다시는 이따위 메일을 사용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긴다. 그까짓 게 뭐라고!
해킹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려는 복잡한 인증절차가 오히려 나까지 차단하는 것 같은 기분은 나만의 착각일까?
어디 그뿐인가? 각종 온라인 사이트,은행, 카드사, 쇼핑몰 등 수많은 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는 곳들은 그들 나름의 인증번호를 요구한다. 그에 따라 때론 짧게, 때론 길게 대소문자, 특수문자, 숫자 등을 조합해 만든 ‘나’라는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비밀번호는 그나마 유일하게 온라인 세상으로 나를 이어주는 열쇠이기는 하다. 단, 그 비밀키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는다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그런데 정말 이런 알파벳과 특수문자, 숫자의 조합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일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OO답다’라는 말에 그 사람의 정체성을 담는다.
“이케아답다, 구글답다, 스티브잡스답다, 김연아답다, 당신답다.”
예시로 든 기업이나 개인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기준과 스타일이 존재한다. 한 마디로 자신을 증명한다는 것은 바로 확고한 자기다움을 가졌다는 의미다. 이렇게 OO답다에는 순간 떠오르는 아우라Aura를 넘어 능력, 열정, 끈기, 태도, 결과물의 수준까지가 담긴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한 기업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를 브랜드에서는 아이덴터티, 정체성이라 말하고 사람들이 기억하는것 또한 이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정체성대로 살아갈 수 있다. 나를 증명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남을 과시하거나 유명해지라는 게 아니다. 자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적이라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의 자유와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행복’이라는 뜻의 그리스 말이고,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행복이 상태를 뜻하는 명사가 아니라 행동하는 동사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다.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조차 몰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 단순한 방법이 어려운 이유는 언제나 정답지가 있는 객관식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제가 좋아하는 걸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전히 방법을 못찾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움직이는 사상가 50인중 한 명인 영국의 매니지먼트사상가 찰스 핸디는 말한다.
“일단 행동하고 경험하고 질문하고 다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른 채 죽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주관식 인생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출처: 까칠여사 브런치 https://brunch.co.kr/@thebrandmu/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