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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생각하면 시작이 다르다

지식 칼럼

by 지식소통가 2009. 2. 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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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나비가 되는 건가요?"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물었습니다.

 

"애벌레이기를

포기할만큼

날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해."

 

"<죽는다>는 걸 말씀하시나요?"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지 않기도 해.

마치 <겉으로>는 죽는 것 같지만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남는 거란다.

삶이 네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변하는 것이지."

 

                                        --- 꽃들에게 희망을 ---  중에서

 

21세기에 가장 화두가 되는 말은 '변화'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는 생존경쟁의 장(場)에서 살아남으려면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많은 교육과 도서들은 하나같이 변화해야 성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머리로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쯤은 확실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 한켠으로는 막연한 불안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애벌레가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고 하늘을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변화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만큼의 간절함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눈을 감고 똑바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매일 밤마다 동네 한바퀴를 도는 것으로 부족한 운동을 대신하고 있다. 벌써 3년이나 되었기에 그 길은 눈감고도 알 만큼 자신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는 단 한발자욱도 자신있게 내딛질 못한다. 함께 운동하는 친구가 앞에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리 안심을 시켜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결국 몇발자욱 가지도 못하고 눈을 번쩍 떠버린 것이다. 변화가 두려운 것은 마치 눈을 감고 길을 가는 것처럼 한치앞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처럼 막막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알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방법을 안다면 설사 낭떠러지를 간다고 해도 무엇이 두려우랴. 두 눈 똑바로 뜨고 가고 있는데 말이다.

 

변화해야 한다는 간절함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변화가 두려운 것은 왜일까? 막상 변화를 시작했는데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면 그 막막함과 답답함은 또다른 두려움이 된다. '모죽'이라고 하는 대나무 죽순은 처음 4년까지는 땅위로 겨우 1m정도밖에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5년째가 되면 어느새 25m이상 자란다.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땅속으로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

너나 그것을 지켜보는 누구든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 이미 나비는

만들어지고 있는 거란다."

 "시간이 조금 걸릴 따름이란다."

                                           ---꽃들에게 희망을 --- 중에서

 그랬다. 변화하려고 하는 간절함과 그 변화하는 시간을 견딜 인내심만 있으면 변화는 가능한 것이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자기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을 고치속에서 견뎌내야 한다. 세상에는 나비가 없으면 꽃도 없다고 한다. 그런 나비도 애벌레에서 고치를 거쳐 힘든 시간을 견뎌야 만들어진다. 물론 애벌레이기를 포기하고 간절하게 나비가 되기를 희망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지금 나비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고치속에서 가혹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두 날개를 펄럭거리며 세상을 날아다닐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응원의 말을 하고 싶다.

'잘 하고 있어! 이제 조금만 더 견디면 되'

Se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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