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툰작가 이랑이 그린 유츄프라카치아
청춘과 열정의 거리, 대학로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제일은 연극이다. 인간의 내면을 가장 리얼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연극무대는 영화나 뮤지컬, 오페라와는 다른 그 무언가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슴 설레며 대학로 소극장의 뜨거운 열기를 느껴본 적이 언제이던가! 지난 10년 동안 7번의 앵콜로 막을 올리고 있는 작품, 유츄프라카치아! 극중 핼렌 켈러의 스승 애니 설리번의 정신적, 육체적 은인인 빅 애니역을 맡고 있는 신경혜 대표를 만났다. 그녀가 말하는 연극인의 삶과 연극 유츄프라카치아는 어떤 모습일까?
유츄프라카치아의 빅 애니를 연기하는 신경혜 대표
자신의 재능(Talent)을 찾은 계기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차범석 선생님의 작품 [고구마]로 전국연극대회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어요. 장학금을 받고 주위의 인정을 받으면서 배우로서의 재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고구마]에서는 굵직한 목소리로 아버지 역할을 맡았답니다. 무대에 서서 관객과 호흡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즐겁고 황홀한지 하면 할수록 이 길이 내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물론 엄하신 부모님은 반대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평생 이 길을 갈 거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요.
<유츄프라카치아>에서 연기를 하면서 연출도 하고 있는데 실은 배우로서의 제가 더 행복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연출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극단을 운영하며 제 생각과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다 보니 직접 연출을 하게 된 것이지요.
연극계가 많이 어렵다고 해요. 저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실감하고 있기도 하구요. 아마도 극장을 찾아와야 볼 수 있다는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기는 해요. 시,공간의 제약 말이에요. 하지만 바로 그 제약이 고급 문화로서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좋은 작품을 배우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바로 연극일 수 있다고 확신하니까요. 영국에서는 배우를 ‘경’이라 호칭하면서 최고의 대우를 해요. 우리나라도 그런 날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자신만의 훈련법(Training)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제가 연극을 하면서 저 자신에게나 후배들에게 해 주는 말이 바로 ‘인내하라’는 말이에요.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연극처럼 바닥생활을 견뎌야 하는 일은 많지 않다고 봐요. 겉으로는 무대에서 화려해 보이지만 제대로 인정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연극인은 극소수이니까요.
저는 연극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분명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두어야지 하면서 흔들린 적이 거의 없었지요. 시간만 나면 어떻게 배역을 잘 소화할까를 고민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는 한 번도 앉은 적이 없었어요. 서서 호흡법을 훈련하며 목적지를 오고 갔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공연도 많이 봤구요. 어떤 것을 보더라도 새로운 시야를 갖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답니다.
무대에 서기 전 자기 최면을 겁니다.
북툰작가 이랑의 유츄프라카치아.
‘이 연극은 최고의 작품이다. 내가 가장 연기를 잘 한다.’
스스로를 속여야 무대 위에서 남들의 마음도 울릴 수 있습니다. 감동은 그런 교감이 통할 때 가능하더라구요. 가장 좋은 배우는 상대방의 대사를 듣는 배우에요. 대사를 외워서 하기만 하면 절대 상대 배우와 느낌을 공유할 수 없고 그런 상태로는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는 게 당연하니까요.
극단의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저는 능력보다 마인드를 보고 채용합니다. 연기력은 긴 시간 훈련하면 발전하지만 사람의 마음 밭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지요. 결국 삶에서 연기가 나오는 거니까 삶이 진지한 사람을 뽑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희 극단은 객원배우는 뽑지 않습니다. 진짜 식구라는 마음으로 함께 한 솥밥을 먹는 그런 가족을 채용하는 거지요. 그리고 이 길에 올인하는 사람이어야 하구요. 사실 한 가지 일에 몰입해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이것 저것 하다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완성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연출가이자 극단 대표인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연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소통(Talk)을 위해 힘쓰시는 게 있다면?
“마이 먹입니다.”
[웰컴투 동막골]의 소통법을 쓰는 셈이지요. 먹을 것을 나누고 함께 자면 정이 생기지요. 그러면 어지간한 불편도 감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요.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밥 해 먹이고 함께 놀고 잘 들어주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요. 특히 더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는 일대일로 만나 밥을 먹이고 재우면서 그 마음을 달래 줍니다.
제가 소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수용성’이랍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이나 하는 것을 기준으로 단원을 채용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말한 후 그 선택을 하게 하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도 희망고문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제가 하는 소통법이랍니다.
'배우는 가족이다'라는 마음으로 행복한 연기를 하고 있는 극단 우물가 배우들과 신경혜 대표
10년 이상 한 길을 걸으면서 시간(Time)을 견디는 노하우가 있다면?
어릴 적부터 제 별명이 ‘moment’ 였어요. 마치 이 순간이 다인 것처럼 산다고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거에요. 좋게 보면 그 순간을 즐기는 거지만 그 순간만 지나가면 다른 순간에 집중하느라 지금 순간을 기억하지 않아서 서운해하는 친구들도 많답니다. 현재 내 앞에 놓인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제가 시간을 견디는 노하우라고 할 수 있지요.
미리 앞날을 걱정하게 될 때마다 슬럼프에 빠졌던 것 같아요. 오지도 않을 미래를 미리 당겨서 걱정하다 보면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사람도 믿지 않게 되고 하면서 슬럼프가 오더라구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돈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힘들 텐데 생각하면 제가 가진 게 참 많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재 이 순간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최면을 거는 것! 시간을 견디는 좋은 방법이에요.”
너무 많은 욕심을 내는 게 저를 힘들게 한다는 걸 살면서 깨달았어요. 저는 배우로서 인기를 얻든 아니든 평생 이 길을 갈 겁니다. 이 길이 내가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즐기면서 일을 하니까 가족도 저를 믿고 응원해 줍니다. 제 남편은 저의 가장 큰 팬이에요.
유츄프라카치아 빅애니 역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난 그저 꽉 찬 물잔 위에 한 방울의 물을 더했을 뿐이야.” 라는 대목이에요. 어찌 보면 빅 애니가 리틀 애니를 위해 모든 것을 했지만 자신은 그저 한 방울의 물을 더했다고 한 것처럼 매사 겸손하게 살고 싶어요.
눈을 뜬 애니 설리번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빅 애니
최고의 때(Timing)은 언제라고 생각하나요?
지금도 너무 행복해요. 하지만 극단 대표로서 최고의 때라고 느낄 수 있으려면 우리 식구들이 걱정 없이 연기에만 올인 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하는 거에요. 지금까지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했다면 2013년을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만큼 잘 견디고 제대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거라 믿어요.
“우리 시대의 엄마, 선생님들이 꼭 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눈 수술을 하기 전 리틀 애니를 데리고 숲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빅 애니... "우리 이담에 꼭 다시 오자. 너 눈뜨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음 놓고 울고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자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라고 말하는 극단 우물가의 신경혜 대표.
<유츄프라카치아> 극 중 빅 애니가 모든 아이들은 다 특별하지만 결코 특이하지 않다고 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의 수준대로 놀아주는 게 진정한 사랑임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극 중 리틀 애니를 붙잡고 안타깝게 울부짖는 빅 애니 "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거칠게 거부하며 울부짖는 애니 설리번을 포옹하며 외치던 그 한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남는다. 결국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내가 어떤 모습이던지, 내가 어떻게 행동하던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내 곁을 지켜 줄 그 누군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