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심이 만난 e-사람] 방송계의 마이더스 터치, 그릿GRIT의 가치로 살아온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박광성 총장을 만나다


꿈을 이루면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 

학교를 지어 사회적 리더 양성과 방송인재를 키우겠다는 오랜 꿈을 이루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박광성 총장. 

끊임없이 배우고 익힌 것을 사회에 나누며 일생공부에 몰입하던 그가  방송계의 전설을 넘어 

이 시대 청춘들과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할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Q: 최근 근황은 어떠신지요? 


교육부 학점은행 4년제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한국방송예술종합실용학교 총장을 역임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배우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요일 별로 다양한 모임을 접하고 있다. 월요일에는 성악을, 화요일에는 건강을 알아야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8체질을, 수요일에는 인생 설계시 마음을 열게 하려고 타로를, 목요일에는 시낭송을 배우고 있다. 

내 삶의 대부분은 [일생공부]하는 마음으로 '배움'과 '나눔'에 집중되어 있다. 배 워서 남 주랴 싶지만 실제로 나는 남에게 주기 위해 배우는 편이다. 그것이 물질이던 정신이던 말이다. 



Q: 사람마다 달란트Talent가 다르다. 자신의 재능을 찾아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1974년 MBC 문화방송 입사, 81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창설멤버로 광고영업을 시작했다. 광고교육원을 만들어 방송과 광고인들의 재교육을 진행하고, 대학생 대상 광고인 양성과정을 대학원 과정으로 운영하기도 했으며 국제광고협회(IAA) 자격증 과정을 연계해 인재를 양성하기도 했다. 교육, 박물관, 광고도서관, 광고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문화회관을 만들었고, 공익광고협의회에서 기획, 진행, 매체 등 광고 관련 총괄 책임자를 지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는 각 방송사 수익을 모아 문화예술계에 직접  공익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88년부터 아주대, 연세대, 이대, 중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10년간 광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동국대 언론정보대학교에서도 8년간 겸임교수를 역임, 소비자심리와 마케팅전략, 방송과 광고, 아이디어창출법, 이미지메이킹 등에 대해 강의를 했다. 

학창 시절 내성적이고 평범했으며 반장 한 번 못해봤던 내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 연세대 행정대학,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에서는 총학생회장을 역임했고, 한양대 언론정보대학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에서는 총동창회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나처럼 공부가 아닌 '끼' 많은 학생들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방송인재이자 사회적 리더로 양성하고 픈 마음에 91년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을 설립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14년간 강의하면서 공부가 아니라 '끼'와 '창의력'을 가진 인재가 리더로 양성되는 것을 보며 배운 것이다. 

광고 번역서 [신문 광고에서 비즈니스를 읽는다], [히트상품, 소문이 만든다], [광고전략]를 펴내면서 방송인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을 전하기도 했다. 

현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교수로 초빙하여 살아있는 교육기회를 만들어주고 경쟁력있는 인재를 양성해 졸업생 취업률 100%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내가 경험하고 배웠던 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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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극적이었던 분이 어떻게 재능을 훈련Training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첫 번째 주역은 바로 '도서관'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도서관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내게 있어 독서는 문화, 예술, 철학, 인문 등 생각과 견문을 넗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두 번째 비법은 바로 '인생에 대시DASH하는 거였다. 펜팔이 유행하던 고1 시절, 미국 뉴욕타임즈에 펜팔을 많이 맺게 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자신들은 시사잡지로 학생 대상이 아니라 도움을 못 주지만 고맙게도 학생신문을 연결해 주었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십 통의 펜팔 편지를 받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생색내며 엽서를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인기가 급상승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나에겐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 주었다. 

세 번째는 바로 '만남' 그 자체였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통해 견문과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시작할 용기를 얻기도 했다. A형인 내가 모임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이 필요로하는 만큼의 외향적인 성향을 훈련시킬 수 있었다. 소극적이던 내가 고1 때 [새물결회]라는 봉사클럽에서 회장이 되고 난 후 나는 자연스럽게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대중 앞에서 테이블 토크, 연설 등을 하며 수려한 입담과 재담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네 번째는 '버티는 힘'이었다. 학창시절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던 내가 세상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은 그저 인내, 지구력, 적응력, 자제력으로 버티는 것 뿐이었다. 힘든 갈등의 순간이나 선택의 기로에서도 '좋은 거다, 그냥 하자'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달래가며 내 안의 문제와 내 밖의 문제를 해결하며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나는 나를 믿으며 시간을 견뎌왔다.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로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투지라는 단어가 그릿Grit이라 한다. 결국 내 삶 자체가 그릿이었다. 평범했던 내가 더디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한 결과 대학원 시절 1~5학기 내내 1등, 최우수 학생상,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더뎌도 늦지 않음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다섯 번째는 '연결'의 힘이었다. 먼저 베풀고 아낌없이 나누라는 황금률을 따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아무 조건없이 연결해 주면서 사람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따지지 않고 무조건 도와주다보면 때론 맘상하는 일도 만나게 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요청하면 주저없이 필요한 곳에 연결해 준다. 그러다보면 윤회설에 따라 언젠가는 그 보답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인생에 DASH하라! 

지금의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바로 #DASH 그 자체였다. 꿈Dream을 명확히 하고 해야 할 바에 집중Attention하여 필요한 일을 해 내고 지속적으로 Steady 사람과 조화롭게 Human & Harmony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Q: 어려운 시간Time은 어떻게 견뎌왔는가? 

명성과 구설수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광고계에서 맹활약을 하던 시절, 주변 동료로부터의 시기와 질투가 끊이질 않았다. 잘 나가는 순간 위기도 함께 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했던 것은 나 자신을 절제하기 위해 애쓴 점이다. 결국 버텨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상하지 않기]가 중요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고, '내려놓음'을 몸소 실천하고 권위없이 대하려고 내 마음을 추스렸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삶의 지혜는 바로 '좋은 관계유지의 힘은 권위 내려놓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격식과 형식을 파괴하고 편하게 나를 대할 수 있도록 마술이나 성악, 타로까지 배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관계맺기'가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내가 나를 절제하면서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내지 않고, 필요없는 것을 정리하면서 얻어질 수 있었다. 결국 지금까지 시간을 견딘 힘은 나 자신을 믿고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올랐을 때 권위가 아닌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내려놓음'이라 말하고 싶다. 


Q: 인생의 절정 Timing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지금도 좋은 때라 말할 수 있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는 전성기는 광고교육원 실절 공익광고를 만들며 사회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제작하며 현장에서 활약했을 때라 말하고 싶다. 그 시절 나는 새벽에 눈 뜨면 출근시간까지 기다리는 게 아까워 세수도 않하고 바로 출근을 했다. 한 두 시간 일에 몰입하다보면 어느 새 동이 터 오고 그 때쯤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고 다시 정상적인 출근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곤 했다. 하루에 두 번씩 출근을 하고 퇴근도 잊을 정도로 열정을 다했던 그 시절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때가 아니었을까. 

물론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일하라 한다면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결국 가슴 설레는 일을 하는 때가 누구에게든 전성기가 아닐까! 가슴 뛰는 일을 하는 한 결코 현역에서 물러날 걱정이나 무기력하고 지루한 업무의 연속에서 허우적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도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지금 역시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말하고 싶다.




Q: 꿈을 이루면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한다. 꿈너머 꿈은 무엇인가? 

한 때 '휘게'가 유행했었다. 휘게Hygge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명사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그처럼 내 삶의 여유를 찾고 그 편안한 삶을 베풀고 나누며 [행복을 전파]하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리고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그릿디렉터로 평생 현역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지속적 성장기회를 만들고 연결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마음 속에 바다를 품고 있는 사람은 작은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인자하고 편한 미소로 일관했던 박광성 한국광고예술교육진흥원 총장님은 자신이 꿈꾸는 삶을 그대로 살아왔고 

그래서 행복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런 행복을 함께 누리기 위해 아낌없이 베품을 실천하고 계시다는 것에 

또 한번 공감과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처럼 행복불감증에 시달리는 이 때, 그를 아는 누구나 자신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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