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리더십, 이젠 멀티젠더가 답이다. 한국경제 뉴스

강연/M리더십 | 2009.11.15 13:59 | Posted by 지식소통 조연심 Se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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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섹스& 더 시티]

멀티젠더가 돼라‥'최초'보다 '최고'가 돼라‥시선을 즐겨라

국 할리우드의 1997년작 '지 아이 제인(G.I.Jane)'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이 영화에는 세계적 스타 데미 무어가 미국 해군 특전대인 네이비실의 훈련을 통과하는 최초의 여성 대원으로 나온다. 데미 무어는 이 작품에서 웬만한 보디빌더는 명함도 못 내밀 만한 근육과 터프함을 보여줬다. 많은 영화 팬들은 남자 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든 액션 연기를 여자의 몸으로 해냈다는 것에 박수 갈채를 보냈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반드시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처럼 생각하는 것만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인가. '

페미니스트들의 이런 의구심은 요즘 직장 여성들이 가장 내밀하게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30년 전처럼 여성 직장인이 희귀했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회사'라는 조직이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여성들의 채용이 늘어나고 입사시험 순위에서도 여성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여성 임원은 아직 찾아보기 힘든 여건이다.

그래서 요즘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는 여성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를 어느 선에서 용인할 것인가,나아가 미래 성공을 위해 직장 내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는 것이다. 미리 그 길을 걸어갔던 선배들도 별로 없기 때문에 특별한 롤 모델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성적 이미지를 억지로 연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1980년대형 여성 직장인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남성 같은 여성'보다는 '여성성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여성'이 훨씬 매력적이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 LG 같은 대기업들이 소프트파워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가진 감성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드센 남성 조직 속에서 불가피하게 중성적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해 왔다는 A그룹 P부장은 "여자라고 하등 불리할 것이 없는 세상이 왔다"며 "요즘 젊은 후배들을 만나면 차라리 '여자'라는 점을 무기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여성 특유의 개성과 경쟁력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갖는 가벼운 성적 관심까지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 경력관리 전문 컨설턴트들이 공통적으로 주문하는 얘기도 P부장의 조언과 맥이 닿아 있다.

경력관리 컨설턴트 조여정씨는 "여자들이 아무리 지위가 높아졌다 해도 아직까지 비즈니스 세계의 주인공은 남자"라며 "그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남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하면서 유연하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15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이연진 과장(가명)은 초임 사무관 시절 상사로부터 "당신은 앞으로 많은 담금질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행시 출신 여성이 많지 않던 시절 무슨 일을 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평가 기준도 남자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일의 성과가 좋으면 남자들로부터 견제를 당했고 "여자가 드세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 과장은 자신에 대한 조직의 불합리한 처우에 맞닥뜨릴 때마다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일했다. 외모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고 남자들과 경쟁하려면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 과장이 달라졌다.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패션에도 더 신경을 썼다. 이 과장은 자신의 변화에 대해 "여성인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며 "예전에는 다이어트와 피부관리는 여유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것도 나를 관리하는 또 하나의 방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기업 교육 컨설턴트인 조연심씨는 "기업들도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의 힘을 깨닫고 있다"며 "여성의 장점을 살려 남성적 리더십의 단점을 보완하는 '멀티 젠더'(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아우르는 말 · multiple+gender)의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남자들과 대적하면서 일하는 스타일로는 직장의 '유리천장'을 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멀티 젠더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실상 국내 기업 문화에서는 퇴근 뒤에도 업무가 이어진다. 특히 술자리 등을 통해 쌓는 친화력과 네트워크는 업무를 해결하는 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런데 여성이 공식적인 자리와 비공식적인 모임을 불문하고 자주 회식 자리에 빠지다 보면 남성들의 견고한 '인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진아 브랜드유리더십센터 소장은 "남자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내 인맥과 커리어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뭔지를 고민하고 키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결국은 능력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드리엔 멘델은 "직장은 남자들의 규칙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여자들이 이런 남자들의 규칙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로 성장할 때까지는 게임의 규칙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 안에는 여성성을 활용하는 것도 좋고,멀티 젠더가 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존재'로 부상할 때까지는 철저하게 능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부사장은 부하 여직원들에게 공공연하게 "남자와 업무량이 똑같으면 업무의 질을 1.5배로 높이고,질이 똑같으면 업무량을 1.5배로 늘리라"고 말한다. 그는 "여자가 남자들처럼 밤새워 술 마시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억울하고 분한 만큼 일에 더 집중해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충고한다.

여성 CEO들은 '최초'보다 '최고'가 되는 것에 집중하라는 조언도 한다. 한 중견 가전업체의 여성 CEO는 "'최초'라는 단어에 집착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업무능력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며 "'여자를 사장 자리에 앉혔더니 역시 결과가 안 좋더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결국 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능력에 대한 적절한 포장도 필요하다. 멘델은 저서 《유능한 여자는 많은데 왜 성공한 여자는 없을까》에서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다음과 같은 행동수칙을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능한 척 행동하라,강한 척 행동하라,게임이 재미없어도 포기하지 말라,감정을 조절하라,공격적으로 대처하라,필요하다면 상대편과 싸워라,항상 팀의 일원임을 명심하라."


◆능력을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취재 과정에서 많은 기업의 여성 임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일관되게 돌아온 대답은 "익명으로 응하고 싶다"였다. 안 그래도 여자여서 남의 이목을 많이 받는데 신문 지상에 이름이 나오면 주변의 쓸데 없는 견제가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여성 커리어에 관한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칼럼니스트 임경선씨는 이런 여자들의 심리에 대해 "동료들의 시샘을 당당하고 뻔뻔하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원래 질투라는 것은 비슷한 직급이나 조건을 가졌을 때 생기는 법"이라며 "자신의 능력을 더 키워서 주변에서 능력의 차이를 쉽게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해법"이라고 제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능력이 못한 이들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여자 간부들의 경우 온갖 차별과 편견을 뚫고 승진한 경우가 많아 주변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하지만 실수에 대해 좀 더 관대하고 여성 특유의 포용력을 보여준다면 많은 잠재 적들을 우군으로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신영 기자  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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