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합작영화 영웅안중근 영화기념>


2016년 영웅안중근 영화개봉을 위해 (주)즐거운 상상과 함께 하는 안중근브랜딩스쿨 첫번째 시간 

감독 주경중의 [ 영웅 안중근을 말하다 ] @ 와이스파지오 2층 


2015 글로벌경험학교 두번째 프로그램 

2016년 영웅 안중근 영화 개봉을 위해 (주)즐거운상상과 함께 하는 안중근브랜딩스쿨 

주최:글로벌창의인재양성소 주관: 엠유 브랜드매니지먼트 후원: 즐거운 상상, 300프로젝트 


일시:2015년 8월 27일~9월 24일 매주 목요일 오후 7-10시

장소:와이스파지오 2층 




각자 30초 자기소개시간을 통해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하는 일, 기대하는 바,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학생, 마케터, 취준생, 영상콘텐츠 제작자, 영화연출자, 시나리오, 안중근홍보대사 스쿨 학생, 학교 선생님, 대학교 교수 등이 함께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이들은 영웅, 안중근, 역사, 콘텐츠, 브랜딩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감독 주경중 BRAND VALUE


안중근은 살아 숨쉬는 역사다. 



안중근은 의사인가 장군인가? 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한 주경중 감독!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전쟁을 수행한 군인이다. 

안중근 의사의 젊은 시절의 꿈은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 것, 멀리 멋진 친구가 있다면 가서 의리를 맺는 것,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평범했던 안중근이 100년 후 우리에게 영웅이 되어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쏜 도마 안중근.. 

왜 이토에게 총을 쏘게 된 것일까? 

영화에서 흥행을 만드는 요인은 가장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랄한 악인이 있어야 한다. 

영화 속 안중근을 빛나게 한 사람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인 셈이다. 


역사를 알면 우리의 현 주소를 알게 되고, 우리의 미래를 알게 된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 시간을 거슬러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는 시간이었다. 

서기 400년 광개토대왕에게 쫓겨간 가야 사람과, 서기 600년 나당연합군에게 쫓겨간 백제인이 일본을 키운 동력이었다. 서기 700년 전에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서기 700년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정착하게 되었다. 

가야인이 세우고 백제인이 다스린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나라다. 


영화 [명량] 1592년 임진왜란를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반도 본토 정복을 꿈꾸고 있었다. 

“우리가 중국을 정복할테니 조선은 비켜라!”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토는 다시 대륙정복의 꿈을 꾼다. 

이토는 일본의 천황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제국주의의 최고봉이 된다. 






안중근은 누구인가? 

황해도의 가장 땅이 많은 부자 안태훈의 아들이었다. 안중근의 아버지는 부국강병을 꿈꾸는 친일파였다. 을사조약 이후의 이완용과는 다른 친일파였다. 

일본 유학 1기 장학생으로 선발된 안중근, 유학가기 며칠 전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청나라를 등에 업은 조선을 일본을 등에 업은 유학자들이 부국강병을 꿈꾸며 김옥균· 박영효·서광범·홍영식·서재필에 의해 일어난 정변이었지만 3일 천하로 끝났다. 


15살에 달리는 말에서 총을 쏴도 명중을 시킬만큼 명사수였다. 

어릴 적 이름은 응칠(하늘의 뜻에 응함) 이었다.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몸에 있었기 때문에 얻어진 이름이었다. 

안중근의 젊은 시절 별명은 떠벌이... 말이 빠르고 많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을 무겁게 생각하고 무겁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중근으로 이름을 개명하게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6살에 결혼을 한 안중근. 


안중근은 동학농민운동의 주동자인 노동자와 농민을 박살낸 사람이었다. 16살 안중군이 동학군을 진압하던 차에 동학군을 지휘하는 김구는 19세였다. 김구는 전국에서 가장 큰 농민 조직을 갖고 있었다. 상해임시정부의 최고 독립운동의 역할을 하게 된 단초를 알게 된다. 안중근과 김구(본명 김창수 )는 둘다 황해도 사람이었다. 김구가 패하고 안중근의 집으로 찾아오게 된다. 안태웅은 김구에게 칙사 대접을 하고, 책과 사람을 소개했다. 16살 안중근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패하기만 하던 김구에게 왜 저렇게 대접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안중근은 사냥을 잘하고, 총명한 소년이었다고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표현했다. 김구와 안중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은 청일전쟁으로 일본이 이김으로 청나라가 조선땅에서 물러남으로 건국이래 청나라로부터 처음 조선이 독립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 바로 독립문이다. 안중근도 처음엔 고맙게 생각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조선은 일본을 응원했다. 

1905년 일본은 을사특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조선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안중근이 국제정세에 그렇게 정확할 수 있었을까? 

카톨릭 서양인 신부를 통해 모든 국제정세를 배울 수 있었다. 

학교를 세워 조선 청년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서양놈들도 일본처럼 우리 편이 아님을 알게 되고는 천주님을 믿을지언정 서양 놈들을 믿지 않겠다. 프랑스어를 더이상 배우지 않겠다고 선포한 안중근... 


1907년 8월 조선이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무장독립투쟁을 위해 만주로 간 27세 안중근. 






그럼 왜 이 시대에 영웅 안중근을 이야기 하는가? 

주경중 감독은 최초의 광주항쟁영화, 최초 3D영화 [나탈리], [동승]을 제작했고, [현의 노래]를 만들다가 중단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다가 허송세월을 보냈다며 아직은 신임감독이라고 말했다. 

모든 감독들은 멋있는 사람들 이야기 속에 무언가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브랜드가 있는 사람들은 들을만한 그만의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안중근은 가슴 뛰는 이야기가 있는 위대한 영웅이기에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700~800만 관객은 감독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1,000만 관객은 하늘의 뜻이다. 

영웅 안중근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영화 제목을 공모한다는 주경중 감독. 

내년 개봉할 영화가 어떤 이름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해진다. 



안중근이 왜 영웅인가? 

동양평화론을 외치던 안중근. 서문만 쓰고 사형당했다. 

1. 은행을 세워 화폐를 통일하자.

2. 군대를 통일하자.

3. 각자 삼족론(청, 일, 한) 나라 왕을 모시고 잘 살자. 


이토는 일본을 중심으로 동북아를 정복한 후 정복한 일본의 힘으로 유럽의 제죽주의에 대항하자. 

안중근은 현재 EU가 주장하고 있는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 

철학을 가지고, 행동하고, 실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졌기 때문에 안중근을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다. 


안중근은 살고 싶었다. 

부인과 노모와 자식 둘과 뱃 속에 있는 아이를 두고 독립을 위해 전행을 수행하고 그 책임을 지고 사형을 당한 것이다.

안중근은 살 수 있었다. 뤼순 감옥에서 '오해'했다고 자백하면 살 수도 있었다. 56일만에 지바 순사도 안중근을 흠모하게 되었다. 안중근은 각각의 직업에 맞게 200여 편의 글을 써 주었다. 

그러나 15가지 이유를 대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큼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는 이제 진짜 영웅을 만나고 싶다. 











다음 주 강의는 [그로스해킹]의 고영혁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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