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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e-사람] 프로방스에서 라벤더향 물씬 풍기는 편지 [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준 원소영 방송작가를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소통인터뷰 & 토크쇼/조연심이 만난 e-사람

by 지식소통가 2013. 8. 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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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사는 법과 가장 느리게 사는 법을 아는 사람, 방송작가로 20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극본을 쓸 만큼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한편 프로방스에서 라벤터향 물씬 나는 느리게 사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돌아온 [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의 원소영 저자를 만났다. 삶에 지치고 흔들릴 때, 방향을 잃고 갈등할 때 잠시 쉬어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프로방스에서 라벤더 향 가득한 들판에 서 있는 [느리게 살아서 즐거운 나날들]의 원소영 저자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예전에는 방송작가로 KBS <아침마당>, <가정저널>을 집필했고 EBS <사랑의 교육학>, <육아일기>, <EBS  문화센터>,<어린이 다큐 -난 할 수 있어요>, <문화사 시리즈>, <길을 찾는 사람들>, <하나뿐인 지구> 외에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썼습니다. 현재는 느리게 천천히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방송작가 일을 계속하며 바쁘고 치열한 현장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프로방스의 느린 삶을 계속 이어나갈지.......


프랑스로 가기 전에 20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썼는데, 방송사 편성 전에 엎어졌습니다. 제작사가 문제가 많았지요. 드라마에 관해서는 사연도 많고 할 말도 많아요. 그래서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방송작가를 그만두려고 했는데요. 막상, 돌아와 보니 갈등이 생기네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제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다시 일을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약간 있습니다.



어떻게 재능(Talent)을 찾게 되었는지? 지금의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저는 지금도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이 진정 글쓰기뿐인가’ 라고요.

다른 작가 분들처럼 저도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글쓰기에 재주를 보였습니다. 당연히 주위에서 제게 대학은 국문과를 가고, 글 쓰는 일을 하라는 조언을 해주셨지요. 저는 막연하게 국문과를 나와 글을 쓰거나,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런 제 꿈은 사촌언니의 조언 한 마디로 멀어졌습니다. 왜냐고요?


-당시, 여학생들의 대학진학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입학정원이 늘어나기 직전이라 대학입시가 더 힘들었지요. 그 때, 이대약대에 진학한 사촌언니가 밥 굶을 국문과보다 취직 잘되고, 대학입학도 쉬운 이과를 선택하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언니도 문학소녀였는데, 지금은 유전공학박사가 되었지요. 언니는, “국문과를 나오지 않아도 좋아하는 글쓰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네가 다른 직업을 갖고, 글도 잘 쓴다면 더 빛날 것 이라며 저를 설득했습니다. 진심어린 충고였지만... 언니의 충고대로 이과를 선택하고 나서부터 제 인생이 힘들어졌습니다. 문과 적성이었던 제가 이과공부를 하려니 성적도 안 나왔고, 전공도 정하기 힘들었습니다. 겨우, 식품공학을 공부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학에 진학했는데요. 막상 식공과를 나온 선배언니들이 취직을 못하고 빌빌대고 있더군요. 식품회사에서 여자들을 잘 안 뽑는다더군요.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남자들은 대학만 졸업하면 무조건 취직이 되는 시절이었지만, 대부분 여자들은 누군가의 빽이나 추천이 있어야 겨우 취직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식공과 대신 공부가 그다지 힘들지 않은 임학과를 선택하고 제 진로를 고민했는데요. 이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는 신이 나지 않았고, 교수님들은 솔직히 여학생의 취직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신문방송학과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는데요. 정말 뒤늦게 돌아돌아서 제 적성과 재능을 찾은 순간이었습니다. 신문방송학과의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는 거예요. 물론 학점도 좋았고요. 힘든 분자식을 쓰는 것보다 ‘000에 관해서 논하시오’ 라고 한 줄 던져놓은 신방과 시험이 제게는 훨씬 쉬웠습니다. 진작 문과공부를 했더라면 대학도 더 좋은데 갔을 것 같더군요.


-그 다음은 취업전쟁입니다. 글쓰기 재능은 발견했지만 그때는 소설을 쓴다던가 하는 엄두는 내지 못했고, 어릴 때 꿈이었던 기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모든 신문사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만 뽑았고요. KBS는 직원모집이 없었고, MBC는 아나운서만 여자를 뽑았습니다. 나이 제한이 있어서 지금처럼 언론사 재수 ,삼수는 꿈도 꾸지 못했고요. 하여간, 이곳저곳 공채를 따라다니다가 전기신문이라는 주간신문사에 취재기자로 입사를 했습니다. 당시, 편집국장 등이 해직기자 출신들이라 작은 신문사지만 꽤 괜찮은 곳이었지요.


-원하던 기자가 됐지만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당시는 그랬습니다. 결혼하면 여자들은 일에서 밀려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KBS 여자 아나운서들도 이계익 사장님이 사규를 바꾸기 전까지 결혼하면 일을 그만두었으니까요.

어느 날, 우연히 방송국에서 일하던 친구가 구성작가 일을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프리랜서의 개념조차 없었던 그 시절, 잠시 망설였지만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방송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을 했는데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더군요. 정열적으로 일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구성작가들은 미혼이었고 모두 한 가닥씩 하는 인물들이었는데요. 유부녀인 제가 어찌나 열심히 뛰어다녔던지 프로듀서들의 인상에 깊이 남았었나 봅니다. 덕분에 방송 일을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불어 닥친 개편 칼바람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지요.


 자신만의 훈련(Training)하는 방법은?


-첫 번째 훈련방법은 독후감쓰기였습니다.

결혼하고 회사에서 잘리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면서도 일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는데요. 시집살이까지 하는 입장이라 제 시간을 갖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녹슬지 않게 갈고 닦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마다 아이를 일찍 재워놓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습니다. 당시, 우리 아이가 참 까탈스러웠는데요. 녀석을 일찍 재우느라 야쿠르트를 탄 분유를 먹이는 바람에 나중에 아이 유치가 모두 썩어서 고생도 많았습니다.


-두 번째는 단편드라마 보기와 영화보기였습니다.

구성작가 7,8년차에 접어들 무렵 갈등이 찾아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현장에서 뛰는 구성작가보다 무게감이 있는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작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체력소모가 심한 다큐멘터리는 제 적성과 잘 맞지 않더군요. 드라마를 쓰고 싶어서 일도 잠시 접고(그 당시 잘 나가던 시절이라 일하자고 아우성인 피디들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드라마 습작을 했습니다. 방송작가교육원을 다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시, 저는 혼자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자만심에 혼자 습작을 했는데요.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습작을 했고, 지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기회가 왔었습니다. 운이 나빴는지 그 기회가 어이없이 사라졌고요. 크게 낙담을 한 저는 다시 구성작가로 돌아와서 10년 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세 번째는 책읽기였습니다.

제가 글쓰기 재능을 받기는 했지만, 너무너무 조금만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속으로 투덜거리고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갈등을 합니다. 나의 재능이 정말 글쓰기일까? 내게 지금까지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불행하게도 아직 저의 다른 재능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책을 읽을 때와 도서관에 갔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책읽기는 알량한 저의 재능을 훈련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제가 행복해지는 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온/오프라인 소통(Talk)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온라인 소통은... 프로방스에 살던 시절 만들어놓은 블로그가 있습니다. ‘생글방글 프로방스댁’이라는 다음블로그인데요. 제가 블로그 운영방식이 서툴러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프로방스로 여행하려는 분들에게 작은 정보는 드리고 있지요.





SUD 축제를 끝내고...




오프라인 소통은... 구체적으로 없네요. 그냥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정도?



꽃시장에서 도린, 델리나와 함께


내친구 제니 생일날


우리집에서 친구들과...


페이롤앙 프로방스에서 중세축제



 지금까지 시간(Time)을 견뎌온 지혜는 무엇인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바쁘지 않게요.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노력을 했고, 욕심도 부렸습니다. 솔직히, 가정을 지키느라 방송작가로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다른 선후배작가들이 일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못 키우고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거든요. 제 아이가 사회적으로 잘 됐고, 안 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엄마로써 아이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길러낼 수 있었던 사실에 만족합니다. 그렇다고 극성 엄마는 절대로 아니었고요. 아이에게 올바른 심성과 예의를 가르쳐 주었고,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는 힘과 능력을 길러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친구처럼 같이 놀아주고, 늘 안아주고, 행복한 마음이 들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더 하자면요, 방송작가로 17년을 일했습니다. KBS ‘아침마당’ 초창기 멤버였고요. 그 전에는 ‘가정저널’ 이라는 아침 정보와 토크프로그램 작가로 일했습니다. 분당으로 이사를 하면서 집과 가까운 교육방송국으로 자리를 옮겨서 많은 교양프로그램을 썼습니다.

제가 일을 미리미리 하는 스타일입니다. 절대로 원고가 늦는 법도 없었고요. 아이디어나 글발도 나쁘지 않아서 저를 찾는 피디들이 많았는데요. 핑계 같지만, 가정에 소홀하지 않으려고 일을 무리하게 벌이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편안하게 팔자 좋게 일을 한 셈이지요. 어쩌면 치열하게 살지 않아서... 일로는 성공을 하지 못한 셈이지요. 그런 면에서 프로방스의 느린 삶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벙투산에서 싸이클리스트들과..


세잔의 그림이 있는 레로브 전망대



 인생 최고의 때(Timing)는 언제라고 생각하는지?


우선, 제가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았을 때가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잖아요. 철없던 저를 성숙하게 해준 아이를 낳고 키웠던 순간은 제 인생 최고의 타이밍이었고요.


다음은, 프로방스에서 살았던 5년의 시간이 제 인생에서 만난 두 번째 최고의 때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마음 속으로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었거든요. 제가 능력이 없다면 남편 능력에라도 기대서 해외살이를 해 보고 싶었고, 50살이 되는 해에는 안식년을 갖고 싶었으니까요. 프로방스에서 저는 두 가지 소원을 모두 이루었고, 여행도 원없이 했습니다. 블로그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여행기도 수두룩할 정도니까요. 그리고 덤으로 소중한 인연과 더불어 제 책까지 얻게 되었으니 프로방스에서 살았던 5년은 정말 제 인생 최고의 때였겠지요?





우리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물론 준비된 자가 다가온 기회의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겠지요? 제 인생의 최고의 시간은 진행형이라고 생각됩니다. 크게 욕심내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순간 최고의 시간은 또 저를 찾아오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당분간 여행은 쉬려고 하는데요. 주위에서 저를 부추기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행경험이 많은데다 영어와 불어가 되니까 꽤 괜찮은 여행파트너로 보이나 봅니다. 게다가 성격도 모나지 않아서 친구들이 같이 여행을 가자는 제의를 많이 해 옵니다. 아직도 저를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걱정하는 남편이 유일한 걸림돌인데요. 아마, 남편도 제가 제일 만만한 여행파트너라서 이런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남편과 잘 협상을 한 뒤, 저 혼자만의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합니다. 우선은 부지런히 책을 읽고, 책으로 세상을 만나는 일을 먼저 할 생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가 떠오르는 원소영 작가! 삶을 여행처럼 즐기며 사는 그 모습에 부러움과 동시에 약간의 질투심이 생긴다. 라벤더(Lavender)는 라틴어로 '씼다', '목욕하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책 읽고, 글쓰고, 여행하며 사는 삶의 즐거움을 제대로 보여준 그녀에게서 여전히 보랏빛 라벤더향이 그려지는 건 지치고 흔들리는 삶의 기억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은 본능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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