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e-사람] 대한민국 최초 댄스테라피 창시자인 신체심리치료사 류분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님을 만나다by 지식소통 조연심

 

“가장 한국적인 것이 우리 것이다. 우리 정서에 맞는 댄스테라피가 필요하다.”

독일 유학시절 유럽식 댄스테라피를 경험하면서 마음 속 울림에 귀 기울이고 한국식 댄스테라피를 만들기 위해 귀국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류분순 이사장을 만났다. 아픈 사람들의 몸짓언어를 읽고 마음부터 달래주는 신체심리치료인 댄스테라피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올해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창립 20주년이 되는 심경 및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대한민국 최초 댄스테라피 창시자인 신체심리치료사 류분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님/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사진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신체심리치료인 댄스테라피스트로 활동하면서 대학원 무용치료전공 지도교수로 이론과 실제 모두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ATA(한국예술심리치료원)에서 무용치료 아카데미를 개설, 직접 운영하고 있고, 심리치료사 슈퍼바이저로 심리치료사들의 임상감독을 합니다. 개인적 심리치료, 가정폭력 여성, 복합심리장애, 부부치료, 위기 청소년 등의 심리치료에 주력하고 있고 외부특강이나 세미나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신체심리치료 전문가라고 정의하면 됩니다.

 

 

재능(Talent)을 찾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주위 사람들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습니다. 뭔가 궁금한 일이 생기면 쟤한테 물어 봐!” 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끼가 지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시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느끼게 되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 무용하고 싶어,”

안동 하회마을 유교집안의 고지식한 아버지는 강하게 반대하셨지만 어머니가 몰래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셔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무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무용시간에 재능을 알아보신 선생님의 추천으로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13명이 함께 발레를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저에게도 무용이라는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춤을 추고 춤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류분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 포토 by 백승휴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바로 고등학교 교사를 몇 년간 하였고 대학원 석사논문으로 ‘청각장애아 무용교육’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무용과 심리학을 접목한 창작무용론, 현대무용, 무용미학을 대구에 있는 대학에서 전임교수로 있으면서 가르쳤습니다.

그 후 결혼과 출산, 교수 일을 병행하면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저에겐 산소 같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심리치료사가 된 계기가 바로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죽음 후, 우울이 왔었고, 그 힘든 와중에 한국 현대 춤작가전, 한국무용사 20년을 아르코 극장과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후, 나는 모든 걸 뒤로 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퀠른 대학 유학비자를 받고 독일무용치료학교를 소개받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무용치료학교의 교수들은 미국에서 자격증을 받고 돌아와 지도하는 편이었고,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은 공허해짐을 느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게 한국의 선禪이라는 생각과 한국적 정서로는 쉽게 설명되는 것들이 오히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맘속으로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가서 가장 한국적인 신체치료방법을 완성하리라.’

그후 미국 ADTA자격증을 받게 되었고 한국댄스테라피협회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 모임인 한국임상예술학회는 예술을 도입하는 학회로 국립서울 정신병원에 사이코드라마를 처음으로 도입한 김유광 박사의 제안으로 추계학술대회에서 댄스테라피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용인병원, 국립서울정신병원의 환자들의 그룹치료를 댄스테라피로 하는 모습을 본 후 각종 TV, 신문, 뉴스 등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앙대 무용요법 시간에 무용치료시간을 정규 커리큘럼으로 진행하게 되었고 숙대, 한양대 대학원에서도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춤을 심리학과 연계해 댄스테라피로 평생을 그 일만 하고 살아온 셈입니다.

 

한국의 춤 역사에서 길을 만든 분으로 유명하신 한국최초의 춤잡지 발행인 조동화 선생님은 아흔의 연세에도 저를 보며 이런 말씀을 하곤 하셨습니다.

“류분순은 대단해. 무용역사책에 나올 거야. 무용계에 새로운 직업을 만든 사람이야”

결국 그 분의 예언대로 저는 무용계에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고 그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습니다.

 

 

신체심리치료사 류분순 교수님

 

 

어떻게 훈련(Training)을 해 왔는가?

 

춤도 그렇고 심리학도 그렇지만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댄스테라피는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결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댄스테라피를 통해 환자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교수님이 제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치료된 사람들에게 듣는 이 말 한마디가 저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였습니다.

 

다양한 임상을 경험하기 위해 저는 만나고 싶은 대상을 만나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성 정신분열증, 학교부적응 아동,청소년, 재소자, 가출청소년, 탈북자, 발달장애,결혼 이민자등, 남들이 꺼리고 피하는 대상을 일부로 찾아 다니며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도 댄스테라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만나 몸에 만연했던 부정에너지를 행복한 긍정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제가 더 행복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좋은 훈련법은 다양한 임상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2000년 미국에서 자격증(BC-DMT)을 받고 무용치료사 자격을 줄 수 있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3650시간의 임상을 거쳤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지요. 10년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긴 시간을 다양한 임상경험에 투자한 결과 2000년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에 표현예술학과 석,박사 커리큘럼을 한국최초로 창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자기 수련을 통해 매 순간 살아있게 하는 것, 집착하지 않고 흐르게 하는 것, 자연의 공간 안에서 잠시라도 머물 것, 내 맘속에 기도의 공간을 가지는 것이 바로 제가 저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소통(Talk)하는 법은?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으로 전세계 댄스테라피스트들과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하여 새로운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학원에서 강의를 통해 제가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들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예술심리치료원(ATA)에서 직접 개설한 무용치료사 교육과정을 통해 늘 새로운 그룹의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춤추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진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2013년 6월 28-30일 (사)한국댄스테라피협회에서 20주년 국제컨퍼런스를 개최, 13개국 45개팀이 참여하여 기조연설, 축하공연, 축제 네트워킹, 만찬 & 파티를 서울올림픽파크텔 1층 올림피아홀에서 열게 됩니다.

이제 온라인 세상에서도 진정한 소통을 하기 위해 작은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노력으로 전세계 댄스테라피스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시간(Time)을 견디는 지혜는?

 

“자기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춤을 추면 그 순간 내면의 진정한 공간으로 들어가 자기 안의 참자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답니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여 현재를 채우면 어느새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게 되고 그 모습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답니다.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오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말하고 싶습니다.

 

 

댄스테라피 창시자인 신체심리치료사 류분순 한국댄스테라피협회 이사장

 

내 인생의 최고의 때(Timing)는?

 

나는 OO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내 공간이 살아있게 하는 것”

지금 여기 Now Here!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최고의 일이고 역시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 바로 최고의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200%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임상경험사례를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던 한국댄스테라피협회 류분순 이사장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앞으로 국내외 워크샵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면서 건강이 허락한다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로 한국댄스테라피를 보급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셨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자 하는 신체심리치료사 류분순 교수님!

그녀의 꿈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느끼면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듯한 자유로운 행복동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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